||<-5>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휘장(제헌-5대).svg|width=30]]]] {{{#cfa547 '''[[대한민국 국회의원|{{{#cfa547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상북도|{{{#cfa547 경상북도}}}]] [[문경군|{{{#cfa547 문경군}}}]])'''}}} || ||<:>초대[br][[조병한]]||<:>→||<:>'''2대[br]양재하'''||<:>→||<:>제3대[br][[윤만석]]|| 梁在廈 [[1906년]] [[7월 6일]] ~ [[1966년]] [[3월 19일]] [목차] == 개요 ==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남원 양씨|남원]](南原)[* 문양공파-병사공파 29세 재(在) 항렬. [[성종(조선)|성종]] 때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양성지]]의 16대손이다.], 호는 건초(建初).부인은 무안박씨이다. == 생애 == 1906년 7월 6일 [[경상북도]] [[문경시|문경군]] [[산북면(문경)|산북면]]에서 아버지 양방환(梁昘煥, 1888. 4. 29 ~ 1950. 8. 14)[* 초명 양세환(梁世煥).]과 어머니 [[풍양 조씨]] 조순이(趙順伊, 1884. 7. 29 ~ 1952. 10. 3)[* 조재정(趙在鼎)의 딸이다.] 사이의 6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 [[기자]] 및 논설위원, [[중화민국]] [[베이징]] 특파원 등으로 활동했다.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역임했다. 1943년 잡지 춘추에 지원병 제도를 찬양하는 글을 기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 문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일민구락부]] [[조병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6.25 전쟁]] 중 납북되었다. 이후 평양시 룡성구역 용궁1동 [[재북인사릉]]에 안치되었다.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언론/출판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남원 양씨]][[분류:문경시 출신 인물]][[분류:1906년 출생]][[분류:1966년 사망]][[분류:기자 출신 정치인]][[분류:납북자]][[분류:재북인사릉 안장자]][[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무소속 국회의원]][[분류:서울대학교 출신/전신 학교/법학전문대학원]][[분류:조선일보 관련 인물]][[분류:동아일보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