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로버트 F. 케네디)] ||<-2> '''{{{+1 에설 케네디}}}[br]Ethel Kennedy'''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thel_Kennedy_2018.jpg|width=100%]]}}} || || '''출생명''' ||에설 스케이컬[br]Ethel Skakel|| ||<|2> '''출생''' ||[[1928년]] [[4월 11일]] ([age(1928-04-11)]세)||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신체''' ||NNNcm, NNkg, 혈액형|| || '''가족''' ||이름 ,,(관계),,|| || '''학력''' ||초등학교 {{{-2 (졸업·중퇴)}}}[br]중학교 {{{-2 (졸업·중퇴)}}}[br]고등학교 {{{-2 (졸업·중퇴)}}}[br]대학교 단과대학 {{{-2 (학과1·학과2[*복수전공] / 재학·학사·중퇴)}}}|| || '''종교''' ||종교|| || '''직업''' ||정치운동가|| || '''소속''' ||[include(틀:민주당(미국))]|| || '''서명'''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fff; border-radius: 4px;"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width=150]]}}}||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의 정치 운동가. [[로버트 F. 케네디]]의 부인이자 미망인인 것으로 유명하다. 남편이 죽은지 56년이나 된 지금까지도 살아있으며, 현재 [[케네디 가문]]의 일원 중 가장 장수하고 있는 인물이다. == 상세 == 1928년 시카고의 부유한 사업가 조지 스케이컬(George Skakel)의 딸로 태어났다. 출생지는 일리노이이지만 성장지는 [[뉴잉글랜드]]였고 코네티컷의 여학교와 수도원에 다녔다. 1945년 맨해튼빌 칼리지 재학 중에 케네디가의 일원이자 로버트 케네디의 누나인 진 케네디와 동급생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키 리조트에서 로버트 케네디와 처음 만났다. 처음에 로버트와 에설은 연인 관계가 아니었지만 1946년 에설이 [[존 F. 케네디]]의 하원의원 선거운동을 도와주면서 진지한 관계로 발전했다. 1950년 2월 에설과 로버트는 약혼했고 4개월 후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에설은 로버트와 마찬가지로 사교계 명사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귀족적이고 우아하기로 유명했으며, 로버트가 많은 정치인과 친교를 쌓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재클린 케네디]]와 같이 공식적인 행사에 많이 참가하지는 않았고 당시 사회가 요구하던 [[요조숙녀]], [[현모양처]] 같은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재클린과는 사이가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다고. 남편 로버트 케네디와는 금슬이 엄청나게 좋아서, 1968년 로버트가 급사할때까지 18년간 무려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거의 1년에 한번씩 아이를 낳을 때가 많았는데 재클린 케네디는 이에 대해 혐오감까지 가졌다고 한다.[* 재클린은 "난 에설 케네디 같은 아이 낳는 기계처럼 살지 않을거에요"라고 존에게 말한적도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 때문에 케네디 3형제의 부인 중에서는 남편과 가장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재클린은 존과 불안한 관계였고, [[테드 케네디]]의 부인인 조앤 케네디는 테드 케네디의 상습적인 음주와 섹스 스캔들, 가정 폭력 때문에 1970년대부터는 사실상 부부 사이도 아니었다. 테드 케네디 본인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조앤 케네디와의 불편한 관계를 최대한 축소서술하고 있을 정도. 결국 테드와 조앤은 1982년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죽을때까지도 금슬이 좋았다. 물론 로버트 케네디가 외도를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비공식적으로 확인된것만 하더라도 수십명이 넘는 배우, 명사들과 섹스를 가졌고 [[재클린 케네디]]까지 건드려서[* 케네디 가문 관계자에 따르면 둘은 육체적인 관계까지 가졌으며, 더 나아가서 아예 로버트가 에설을 버리고 재키와 결혼하려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여성 관계가 난장판이었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에설 케네디도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로버트는 이것을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아며 마음까지 사랑하는 것은 에설 케네디 하나 뿐이라고 했기에 에설은 마지못해 로버트의 외도를 용납하였다. 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로버트는 자주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긴 하더라도 집에서는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였고, 1960년대에 흑인 민권 문제 때문에 로버트 케네디와 사이가 깊었던 민권운동가 겸 정치인 [[존 루이스]]는 "로버트 케네디와 에설 케네디는 내가 봐온 그 어떤 정치인들 중에서도 가장 사이가 좋았고,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존 F. 케네디 재임 기간 동안에는 "대리 영부인" 수준의 대우를 받았고, 존 F. 케네디가 사망한 이후에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사건|남편이 암살당하자]] 에설은 진심으로 슬퍼했으며 뇌사 상태에 빠진 남편의 생체 유지 플러그를 뽑는 것을 거부하였다.[* 결국 재클린 케네디가 대신 로버트 케네디의 생명 유지 포기각서를 쓰고 플러그를 뽑아줬다.] [[재클린 케네디]]와는 달리 에설은 로버트를 잊지 못하고 평생 재혼하지 않았으며, 대외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이후 [[테드 케네디]]의 선거운동을 돕는 등 제한적인 외부 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냈으며, 2008년에는 케네디 가문의 일원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를 지원해 그가 당선될 수 있도록 도왔다. 2024년 현재까지도 생존하고 있는데, 그의 아들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까지 보게 되었다. 그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지지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 여담 == * [[테드 케네디]]의 사망 후 케네디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케네디 가문의 인사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전설적인 로버트 케네디의 남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가 너무 많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제작이나 인터뷰 등을 제외하면 거의 활동은 안하고 있고 존 F. 케네디의 딸이자, 현 호주 대사인 [[캐롤라인 케네디]]가 사실상 케네디 가문 당주처럼 활동한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케네디 가문)] [[분류:1928년 출생]][[분류:시카고 출신 인물]][[분류:케네디 가문]][[분류:로버트 F. 케네디]][[분류:미국 민주당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