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나치 독일 친위대 국가지도자)] [include(틀:슈츠슈타펠/장성급 지휘관)] |||| '''제3대 친위대 국가지도자[br]{{{+2 에르하르트 하이덴}}}[br]Erhard Heiden''' |||| ||||{{{#!wiki style="margin: -4px -9px" [[파일:에어하르트 하이덴1.jpg|width=100%]]}}}|||| || {{{#FFF 이름}}} ||<(>'''Erhard Heiden'''[br] 에르하르트 하이덴|| || {{{#FFF 출생}}} ||<(>[[1901년]] [[2월 23일]] [br] [[독일 제국]] 뮌헨 || || {{{#FFF 사망}}} ||<(>[[1933년]] (향년 32세) [br] [[나치 독일]] || || {{{#FFF 복무}}} ||<(>[[독일제국군]] [br] [[슈투름압타일룽]] [br] [[슈츠슈타펠]] || || {{{#FFF 최종계급}}} ||<(>[[슈츠슈타펠]] [[장관]] (국가지도자) || || {{{#FFF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 [목차] [clearfix] == 개요 == || [[파일:에어하르트 하이덴2.jpg|width=100%]] || || 왼쪽은 [[아돌프 히틀러]], 오른쪽에 친위대 제복을 입고 있는 하이덴과 [[루돌프 헤스]]가 있다. || [[나치 독일]]의 친위대 제3대 국가지도자를 지낸 초기 나치의 당원이었다. == 생애 == [[뮌헨]] 출신인 하이덴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던 [[1918년]] [[독일제국군]]에 입대했다. 이후 [[1925년]]에 [[나치당]]과 [[SA|돌격대]], [[슈츠슈타펠|친위대]]에 들어갔는데, 최초로 친위대를 돌격대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당원이다. [[1927년]] [[3월]]에 [[슈츠슈타펠/국가지도자|친위대 국가지도자]]로 임명된 하이덴은 친위대원에게 엄격한 규율을 강요했기에 1,000명이던 친위대 대원은 280명까지 줄어 돌격대는 친위대가 오히려 해산할 것이라 비아냥대기도 했다. 하이덴은 자신의 오른팔로 [[하인리히 힘러]]를 친위대 국가지도자 대리로 임명하여 난국을 풀어나가는 것을 시도했다. 하지만 제복을 맞추기 위해 유대인 가게를 이용했다는 고발이 들어가면서 [[1929년]] [[1월 5일]]에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해임되어 후임으로 힘러가 임명되었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1933년]] 2인자였던 힘러는 자신의 한때 상관이던 하이덴이 정적으로 앞길을 막는 것을 우려해 친위대에 명령하여 하이덴을 체포한 후 뮌헨의 보안부 본부로 끌고 가 감금한 뒤 처형한 다음 부하들을 시켜 시체를 버리게 했다. 숨진 하이덴의 시체는 [[9월]]에 발견되어 [[9월 15일]]에 장례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하이덴의 죽음이 그가 잡혀간 4월인지, 아니면 시체가 발견된 9월인지 정확하지 않다. [[분류:1901년 출생]][[분류:1933년 사망]][[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나치당원]][[분류:슈투름압타일룽/인물]][[분류:친위대(나치 독일)/인물]][[분류:총기에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