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炎興}}} [목차] == 개요 == ||<-3><:><#008000> '''[[촉한|{{{#fff 촉한}}}]]{{{#fff 의}}} [[연호|{{{#fff 연호}}}]]''' ||<-2><:><#00008B> '''[[위(삼국시대)|{{{#fff 조위}}}]]{{{#fff 의}}} [[연호|{{{#fff 연호}}}]]'''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유선(삼국지)|회제]][br][[경요(연호)|경요]](景耀)[br]{{{-2 ([[258년]] ~ [[263년]])}}}}}} ||<:> {{{+1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fff [[유선(삼국지)|{{{#fff 회제}}}]][br]염흥(炎興)[br]{{{-2 ([[263년|{{{#fff 263년}}}]])}}}}}}'''}}} ||<:> {{{+1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조환|원제]][br][[경원(연호)|경원]](景元)[br]{{{-2 ([[263년]] ~ [[264년]])}}}}}} || [[촉한]]의 제2대 황제인 [[유선(삼국지)|유선]]이 선포한 연호로 촉한의 마지막 연호이다. 오행설에 의하면 후한은 화덕을 숭상하는 국가로, 촉한의 건국은 후한을 계승하여 화덕을 숭상하기 때문에 화덕이 흥한다는 의미에서 염흥으로 연호를 정했다. 그러나 [[위(삼국시대)|위나라]]가 이끄는 대규모 군사 침공을 받았고, 해를 넘어가기 전에 촉한이 멸망했기 때문에 염흥 연호를 사용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촉한이 망하고 [[상충(삼국지)|상충]]이 위나라로 귀순하면서 염흥에 대해 해석했는데, 촉한의 두 군주의 이름을 합쳐 다 갖춘 다음에 다른 사람에 넘겨주는 의미이고, 위나라의 실권자가 된 [[사마염]]의 이름이 염(炎)으로 초한은 염흥 연간에 그 끝을 만났고, 진귀한 옥구슬이 성도에 나왔으므로 상국의 부에 보관했는데, 이는 하늘의 뜻으로 다음해 12월에 [[사마염]]이 즉위해 염흥의 뜻이 이것을 불러왔다고 했다. == 주요 사건 == ||<-4><:><#008000> {{{#fff '''연도 대조표'''}}} || || '''염흥(炎興)''' || '''[[육십갑자]]''' || '''[[서력기원]]''' || ''' 비 고 ''' || || '''원년''' || [[계미]](癸未) || [[263년]] || 염흥 개원[br][[촉한멸망전]][br]촉한 멸망 || [[분류:연호]][[분류:3세기]][[분류:삼국시대(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