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월 군주)] |||||| '''{{{#ece5b6 월(越)나라 38대 국군[br] 6대 왕[br]{{{+1 월왕 예}}}[br]越王 翳}}}''' |||||||||| |||| '''[[성씨|{{{#ece5b6 성}}}]]''' |||| 미(羋) || |||| '''[[휘|{{{#ece5b6 휘}}}]]''' |||| 예(翳) / 불광(不光) / 수(授)[* [[여씨춘추]](呂氏春秋) 심기(審己)편의 기록.] || |||| '''{{{#ece5b6 아버지}}}''' |||| [[주구|월왕 주구]] (越王 朱勾)[* 옹(翁)이라 하기도 한다.]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375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410년 ~ 기원전 375년 (36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제39대 군주이자, 제6대 왕. 월왕 [[주구]]의 아들. 월왕 [[제구(월나라)|제구]]의 아버지. 그 또한 아들인 태자 제구에게 살해당했다. 달리 월왕 불광(不光)이라고도 전해진다. == 생애 == 월왕 예 7년(기원전 404년), 월왕 예는 강성한 월나라의 힘을 믿고 [[제(춘추전국시대)|제(齊)나라]]를 쳤다. 당시 증(繒)나라는 제나라만 믿고 월나라를 경시했다. 월왕 예는 거기에 분노해 증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월왕 예 20년(기원전 391년), 제나라 상국 [[제태공(전제)|전화]](田和)는 [[제강공]]을 외딴 섬으로 보내버리고 자신이 제나라를 먹어버렸다.[* 이것을 전씨 제나라의 약자인 전제(田齊)라 한다. 제 강공의 제나라는 강성(姜姓) 제나라의 준말로 강제(姜齊)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왕 예는 거기에 간섭하기 위해 출동했다.[* 이유는 중원의 패권의 재확인 즉 월나라가 패자국임을 재확인하려 한 탓이다.] 그러나 전화가 신중히 대처하는 바람에 월왕 예는 이득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월왕 예 25년(기원전 386년), [[주안왕]]은 전씨를 제나라의 후작에 봉했다.[* 즉 제나라는 2개가 생긴 셈이다. 이 당시 제 강공은 죽지 않았으므로(기원전 379년 사망.) 전제와 강제 2개가 있었다.] 한편 날로 강성해져 가는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와 복수를 노리는 옛 [[오(춘추시대)|오나라]] 귀족들의 자손들이 두려워 중원의 일에 간여하지 못했다.[* 초나라의 득세와 월나라가 제나라 원정에 실패하자 이들이 일어난 것이다.] 월왕 예 33년(기원전 378년), 수도를 낭야(琅琊)에서 고소 땅으로 옮겼다.[* 중원에서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증거다.] 월왕 예 36년(기원전 375년), 동생인 공자 예(豫)가 왕위를 계승하고자 3명의 왕자를 살해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월왕 예에게 태자 제구를 제거하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월왕 예는 거절했다. 7월 태자 제구는 그 일로 두려움을 느끼고 공자 예를 치고자 궁을 포위했다. 그 중에 월왕 예가 살해당했다. 그리고 월왕 제구가 즉위했다. [각주] [[분류:월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375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