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일:정부상징.svg|width=30&height=30]] '''[[대한민국의 보물/1~200호|{{{#f39100 대한민국의 보물}}}]]''' || || 1호 ||<|2> ← || '''2호''' ||<|2> → || 3호 || || [[흥인지문]] || '''옛 보신각 동종 ''' ||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보물|{{{#f39100 대한민국 보물 제2호}}}]]''' || ||<-2> {{{#fff {{{+1 '''옛 보신각 동종'''}}}[br]{{{-1 舊 普信閣 銅鍾}}}}}}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중앙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국립중앙박물관]] || || '''{{{#fff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 의식법구 / 의식법구 || || '''{{{#fff 수량}}}''' || 1구 || || '''{{{#fff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시대]], 1468년 || [[파일:옛 보신각 동종.jpg|width=500]]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세조(조선)|세조]] 14년(1468)에 만든 [[보신각]]의 초대 [[종(악기)|종]].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으로 [[대한민국의 보물]] 제2호이다. == 내용 == 종에 있는 명문에 따르면 조선의 7대 왕이었던 세조가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으로 당시 제조(提調)로 있던 황효원(黃孝源)과 감역, 김덕생, 정길산 등에게 왕명을 내려 재위 14년인 1468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총 높이 318 cm로 현존하는 한국사의 종들 중 [[성덕대왕신종]]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초대형 범종이며 조선시대에 주조된 종 중에서는 가장 크다. 여러 번 기구한 운명에 처했던 종으로 처음에는 세조의 명으로 정릉사 [* 평양의 정릉사가 아닌 태조의 왕비인 [[신덕왕후]] [[정릉(서울 성북)|정릉]]의 능침사] 에 배치하였지만 이후 [[원각사]]로 옮겨졌다. 그러나 원각사가 [[연산군]]에 의해 폐사지가 된 후 중종은 원각사를 허물고 다시 [[김안로]]에게 종을 [[숭례문]]으로 옮기게 하였다. 이렇게 계속 강제로 이사다니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화재로 종루가 불타고 종 또한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광해군]] 때 종을 복구하여 사용하였으나 고종 6년, 1869년에 다시 한번 화재로 크게 손상을 입었다. 이후 종을 다시 고치고 고종 32년(1895)에 종각을 새로 건설하면서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때부터 보신각종이라 불렸다. 1910년 조선이 멸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된 후에도 한동안 계속 사용했다. 보신각을 중건한 1953년부터 [[제야의 종]] 타종이 연례 행사로 자리잡은 이후 30여년 간 매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마다 33번의 종소리를 울렸다. 그러나 종이 너무 오래 되어 계속 사용시 훼손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1985년에 새 종[* 지금까지 걸려있는 이 새 보신각 종은 경주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복제했다고 한다.]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제작된 지 517년 만에 퇴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 의의 == 오랜 세월 동안 제야의 종으로 조석을 알리는 역할로 사용된 한국 범종사상 의의가 매우 깊은 문화재이다. 다만 역사상 두 차례의 격동의 시기 때마다 우리나라와 운명공동체로 함께 불타서 지금은 많이 훼손된 상태이고, 따라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21세기 최첨단시대 이전에 제작되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는 여러 대종 유물들 중, 우리나라 역사상 세 번째로 큰 대형 종으로 불교문화와 범종 제작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달했던 [[통일신라]]와 [[고려]] 시기의 종들과 비교해보아도 종파사, 미술사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매우 완성도 높은 종이다. 세조 시기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띠장식과 명문이 있고 유려한 보살상 1구가 판각되었다. [[여의주]]를 물고 날아오르는 쌍룡은 매우 역동적이고 용맹하여 당시 수준 높은 조각기술을 가늠해볼 수 있다. 화재로 많이 훼손되어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주조 당시에는 네 구의 보살이 교대로 배치되어 있는 등 더욱 화려했으리라 추정한다. == 보물 제2호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0020000,11&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옛 보신각 동종 (舊普信閣 銅鍾)]]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서 보관 중이다. >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 >이 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 같이보기 == * [[보신각]] * [[숭례문]] * [[원각사]] [[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분류:범종]][[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