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레온 국왕)] ||<-3><:>[[파일:오르도뉴 4세.jpg|width=100%]]|| ||<-3><:>{{{+1 '''Ordoño IV de León''' }}}|| ||<-2> '''가문''' ||<(> 아스투리아스 왕조 || ||<-2> '''생몰년도''' ||<(> [[925년]] ~ [[962년]] 또는 [[963년]] || ||<-2> '''출생지''' ||<(> [[레온 왕국]] || ||<-2> '''사망지''' ||<(> [[후우마이야 왕조]] [[코르도바]] || || '''재위'''[br]'''기간''' || '''[[레온 왕국]] 국왕''' ||<(> 958년 - 959년 || ||<-2> '''아버지''' ||<(> [[알폰수 4세]] || ||<-2> '''어머니''' ||<(> 오네카 사노이츠 || ||<-2> '''형제''' ||<(> 프루엘라 || ||<-2> '''배우자''' ||<(> 우라카 페르난데스 || ||<-2> '''자녀''' ||<(> 가르시아 외 1명 || [목차] [clearfix] == 개요 == [[레온 왕국]] 9대 국왕. == 생애 == 925년경 레온 왕국 5대 국왕 [[알폰수 4세]]와 [[나바라 왕국|팜플로나 왕국]] 국왕 [[안초 1세]]의 딸 오네카 사노이츠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로 프루엘라가 있었다. 931년 아버지가 [[라미루 2세]]에게 양위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초 복위를 꾀했다가 체포되어 실명형에 처해졌을 때 그가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이후 수십년간 잊혀졌던 그는 958년 [[산추 1세]]에게 불만을 품은 레온, 카스티야 귀족들에 의해 레온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959년 후우마이야 칼리파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와 팜플로나 왕국 국왕 [[가르체아 1세 사노이츠]]는 산추 1세를 복위시키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하여 레온 왕국으로 진격했다. 그들은 그 해 사모라를 공략했고, 960년에 카스티야 백작 페르난도 곤살레스를 격파하고 사로잡았다. 오르도뉴 4세는 연합군이 레온 시 목전에 이르자 아스투리아스로 달아났다. 이리하여 레온 왕위에 복위한 산추 1세는 후우마이야 왕조의 봉신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그들의 지원을 받아 아스투리아스로 달아난 오르도뉴 4세를 재차 공격했다. 오르도뉴 4세는 961년 부르고스로 달아난 뒤 알 라흐만 3세에게 자신을 복위시켜주면 레온 왕국의 남쪽 영토를 통째로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알 라흐만 3세가 그해 10월에 죽으면서 무산되었다. 962년 알 라흐만 3세의 뒤를 이어 칼리파에 오른 [[알 하캄 2세]]는 오르도뉴 4세가 자신을 도와주면 레온 왕국 남쪽 영토를 지키고 있는 성채 10개를 할양하겠다는 제안을 받자 그를 코르도바로 불러들인 뒤 원정을 준비했다. 그러나 오르도뉴 4세는 962년 또는 963년 코르도바에서 돌연 사망했는데,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카스티야 백작 페르난도 곤잘레스의 딸이며 [[오르도뉴 3세]]의 아내였다가 결혼 무효화된 우라카 페르난데스와 결혼했다. 레온 왕국의 성직자이자 학자인 삼피로의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우라카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중 가르시아는 후우마이야 왕조의 지원을 받으려는 아버지의 의향에 따라 인질로 보내졌다고 하며,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분류:레온 국왕]][[분류:925년 출생]][[분류:폐위된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