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독일 국방군/장성급 장교)]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1 오이겐 마인들}}}[br]Eugen Meindl'''}}}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마인들1.jpg|width=100%]]}}} || ||<|2> '''출생''' ||[[1892년]] [[7월 16일]] || ||[[바덴 대공국]] 도나우에싱겐 || ||<|2> '''사망''' ||[[1951년]] [[1월 27일]] || ||[[서독]] [[뮌헨]] (향년 58세) || || '''복무''' ||[[독일 공군(나치 독일)|나치 독일 공군]] || || '''최종 계급''' ||[[대장(계급)|공수대장]] (General der Fallschirmtruppe) || ||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br] [[제2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 국방군]]의 공수대장. == 초기 행적 == 오이겐 마인들은 [[바덴 대공국]] [[https://de.wikipedia.org/wiki/Donaueschingen|도나우에싱겐]](Donaueschingen)에서 태어났다. [[1912년]] [[7월 27일]]에 [[독일 제국군]]에 [[육군]] [[포병]] [[장교]]가 됐고, [[제1차 세계 대전]] 때 [[소대]][[소대장|장]], 후에 [[중대]][[중대장|장]]이 되어 제67포병[[연대]] [[부관]], 제52[[군단]] 포병지휘부관으로 근무했다. 마인들은 육군의 여러 포병부대를 전전하면서 [[1924년]] [[8월 1일]]에 [[대위]]로 승진하여 [[1926년]] [[9월]]에 국방성에 [[소령]]으로 진급 후 이적했다. == [[제2차 세계 대전]] ==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39년]] [[11월 10일]]에 마인들은 제112 산악포병연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대령으로 곧 승진한 그는 '''<마인들 그룹>'''을 이끌면서 나르비크에 처음으로 낙하산으로 침투했다. 마인들이 공군으로 전속한 것은 [[1940년]] [[11월 28일]]이었지만 그는 강하수렵병의 마인들 돌격연대를 [[8월 9일]]부터 지휘했었다. [[크레타 섬]]으로의 공수작전인 메르쿨 작전에서 마인들은 플라타니아스 다리 부근에서 낙하 중 [[총검]]이 가슴을 찌르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에드거 슈텐츨러 소령이 대신 연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1942년]] [[2월 26일]]에 마인들은 소장으로 진급해 동부전선에서 새로 편성된 마인들 전투단의 지휘관이 되어 [[9월 26일]]에 제12 항공공수군단[* 후에 제1 강하수렵병 군단]의 지휘를 담당했다. 마인들은 [[동부전선]]의 겨울전투에서 명성을 쌓아 독일군의 군보에 실릴 정도였는데 [[1943년]] [[11월 5일]]에 제2 강하수렵병 군단의 지휘관으로 승진하여 [[서부전선]]으로 이동해 연합군의 대륙침공 최전선인 크레페와 라이히스발트에서 싸웠다. == 전후 행적 == 마인들의 군단은 고흐와 베젤의 교두보에서 분전했지만 결국 연합군에게 패배해 마인들은 포로로 잡혀 수감되었다. [[1947년]] [[9월 29일]]에 풀려난 마인들은 [[1951년]]에 [[뮌헨]]에서 사망했다. [[분류:1892년 출생]][[분류:1951년 사망]][[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 제국의 군인]][[분류:독일 국방군/인물]][[분류: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