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모빌 크라이오바|[[파일:Oltcit_logo.png|width=15%]]]]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oltcit-club-01.jpg|width=100%]]}}} ||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f> [[파일:86807020_123002375816187_8677902879501058048_n-768x576.jpg|width=100%]]||}}} || ||<#fdb515> {{{#ffffff '''Club'''}}} || [목차] '''Oltcit Club / Citroën Axel''' == 개요 == ||<#fff> [[파일:oltcit-club-02.jpg|width=100%]] || [[https://moje.auto.cz/?sekce=foto&im_id=im_518d85e5d3c87&ga_id=GA_518d765a270b0|체코어 올트시트 클럽 사진 모음]] [[http://www.citroenmodelcars.nl/html/galleryaxel.htm|올트시트 클럽 모형 모음]] '''올트시트 클럽'''은 [[1984년]]에서 [[1988년]] 사이에 생산된 B 세그먼트로 [[프랑스]]의 [[시트로엥]]과 [[루마니아]] 정부의 합작 회사인 [[오토모빌 크라이오바|올시트]]가 협력하여 개발했다. == 개발 == [[시트로엥 비자]]의 전신인 프로젝트 Y가 비용절감 과정에서 중단된 이후, [[1976년]]에 [[루마니아]] 정부와 [[프랑스]]의 [[시트로엥]]에서는 올트시트(Oltcit) 브랜드를 설립했고, 올트시트라는 브랜드명은 루마니아의 서남부 지역인 얼테니아('''Olt'''enia)와 시트로엥('''Cit'''roen)을 합쳐 지어진 이름이었다. 챠우셰스쿠 정부는 농업국가였던 루마니아를 산업화 하려는 일횐으로 서구권 업체와 같이 합자회사를 차려 자동차를 생산하려고 했는데, [[폭스바겐]]과 [[르노]], 시트로엥이 참여해서 르노는 [[다치아]](Dacia) 브랜드로 차를 생산하기로 했고, 시트로엥 역시 루마니아의 자동차 시장에 대해 높은 잠재력을 예상해서 --'''공산권 지원한다는 욕을 감수하고'''-- 거래에 동의한 것이다. 차량 개발은 시트로엥에서 프로젝트 Y를 이어받아 개발하기로 했으며, 루마니아 정부가 지분 64%를, 시트로엥이 지분 36%를 나눠 가지고, 루마니아의 크라이오바(Craiova)에 공장을 지어 새 차를 생산하되 생산 대수의 40%를 해외에다 수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본래 올트시트에서는 프로젝트 Y의 결과물인, [[피아트]]-시트로엥이 공동 개발한 5도어 해치백을 현지생산하기로 했지만, 계약이 체결된 1976년에는 피아트와의 거래가 완전히 물 건너간 둑분에 프로젝트 Y의 후속인 TA를 발전시킨 3도어 해치백을 만들기로 했다. 견고함울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문짝 2개를 제거한 것은 물론, 전자 계통 부품도 단순화시켰으며, [[대한민국]]마냥 일교차가 큰 루마니아의 날씨를 고려해 절연 처리에도 상당한 신경울 썼다. 기술적으로는 [[시트로엥 GS]]의 4단과 5단 수동변속기, 비저의 2기통 복서엔진과 GS의 4기통 복서엔진 2가지를 사용했으며, 서스펜션 구조는 세로배치 토션바 서스펜션 + 차체에 고정괸 가로배치 탄성 플레이트를 사용해 단순한 구조지만 시트로엥답게 뛰어난 승차감을 보장했다. == 생산 == 이후 1981년, 올트시트의 이름으로 처음 출신된 차이자, 시트로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마지막 차였던 이 차는 '''''올트시트 클럽'''''이리는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이 차가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챠우세스쿠 정부의 막장화가 심각해진 것을 비롯해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따라서 본래 [[1980년]]에 생산하려고 했던 게 [[1982년]] 말까지 미뤄져 썩 좋지 못한 시작을 보였다. 기본적인 생김새는 전형적인 70년대 시트로엥 스타일이었고, 주관족인 평을 좀 곁들이자면 시트로엥 GS나 CX, 비자를 적당히 곁들인 듯한 모습이었다. 좀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젝트 Y의 프로토타입을 3도어로 개조한 개 딱 이런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테리어도 비자처럼 상당히 시트로엥다운 모습이었고, 비자처럼 PRN 새틀라이트 제어판과 1스포크 스티어링 휠이 장착되는 등, 실험적이고 튀는 성향이 강한 시트로엥의 전형을 여전히 보여주었다. 당시 라인업은 652cc 2기통 OHV 34마력 + 최고시속 121.2km/h이었다. 공인연비 리터당 14.7km/h을 기록한 스페셜과, 1129cc 4기통 SOHC 57.4마력 + 최고시속 149.4km/l이었다. 공인연비 리터당 10.2km/l를 기록한 클럽 11R, 1129cc SOHC 61.5마력 + 최고시속 157km/l이었다. 공인연비 리터당 13.km/l를 기록한 클럽 12TRS와 CS 픽업트럭이 제공되었다. 프로토타입 시절부터 공기저항을 낮추는데 신경울 쓴 시트로엥의 시도가 번영되어 공기저항계수도 당시 평균보가 낮은 0.36~37cd 정도였고, 수출을 의도한 만큼 공장에도 품질 개선을 위해 기계화 공정을 도입했다. [[1984년]]부터는 시트로엥에서 올트시트를 [[서유럽]], [[캐나다]] 시장에서 시트로엥 브랜드로 판매했으며 종종 'Citroen Axel(시트로엥 악셀)' 이라는 배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새트로엥애서는 이미 동급 차량으로 비자를 팔고 있었지만, 얼트시트 클럽은 3도어 전용 라인업에 휠씬 단순한 설계라 비자뢰의 판매 간섭이 적을 거라고 봤었고, 가격 역시 [[시트로엥 2CV]]보다도 싸게 잡았다. 라인업은 클럽/ 11R 엔터프라이즈/ 11R/ 12TRS/ 12TRS 엔터프라이즈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1리터 버전은 비자 기본형보다 10% 저렴[* 심지어 2CV(!)보다도 저렴했다.]해 농부들이나 작은 마을 주민들에게 호흥울 얻었다. 하지만 악셀/ 올트시트 클럽의 조립품질 문제가 너무 심각한 나머지, 매년 30만대의 차를 찍어낼 수 있었음에도 1988년에 수출이 중단될 때까지 겨우 60184대만 판매되었다.--영국 수출을 언 한개 다행이다...-- == 단종 == 시트로엥 악셀의 판매룰 중단한 지 1년이 훌쩍 지나자, 루마니아 사회도 크게 변해 있었다. 챠우세스쿠 서기장은 막장행각으로 자기 호위명들한테 총살당했고, 새 정부도 민주주의로 새 간판을 달았다. 시트로엥 역시 억셀의 품질에 실망한데다가 수출고 중단한 지 2년이나 지났고, 이때룰 기회로 [[1991년]]에 울시트와의 제휴를 중단해 버렸다. 이후 올트시트는 기존의 올트시트 클럽을 올테나(Oltcitena) 브랜드로 생산하면서 얼마간 버텼으며, 회사명도 Automobile Craiova S.A.로 변경해 운영하다가 [[1994년]]에 [[대한민국]]의 [[대우중공업]][* 이후 [[대우자동차]] 쪽으로 변경.]과 49:51 형태의 합자 계약이 이루어지면서 루대[* 당연히도 [[루마니아]]의 앞 2글자와 [[대우자동차]]의 앞3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브랜드로 판매가 되었고, [[1996년]] 차량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 이후 올트시트는 대우차의 생산 기지로 계속 운영하다가 [[대우그룹]] 도산 이후 [[포드]]가 인수해,[* 동시에 사명을 Ford Rimania S.A.(포드 루마니아)로 변경했다.] 승합차인 [[포드 트랜짓|포드 트랜짓 커넥트]]([[2008년|2008]])를 생산하고 나서 [[포드 B-맥스]]([[2012|2012년]]) 미니맨의 생산 기지로 운영하고 있다. 한편, 시트로엥과 같이 루마니아에 투자를 했던 르노는 다치아를 인수해서, 염기차 브랜드로 잘 활용하고 있다. ||<#fff> [[파일:oltcit-tuning.jpg|width=100%]] ||<#fff> [[파일:oltcit-tunat-2.jpg|width=100%]] || 단종된 지도 오래인 현재는 대부분 노후화로 폐차되었으나, 매니아들 사이에서 사랑받아 이렇게 튜닝되기도 한다. == 파생 모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올트시트 클럽/ 파생모델)] == 둘러보기 == [include(틀:시트로엥의 차량)] [[분류:시트로엥/생산차량]][[분류:1981년 출시]][[분류:1996년 단종]][[분류:소형 해치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