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식 명칭 || 외환은행 여자 농구단 || || 창단 || [[1974년]] || || 해체 || [[1997년]] || 여자 농구 실업 구단. 외환 위기 당시 해체한 곳 중 하나다. 원래 전신격인 팀이 하나 있었다. 1972년 생긴 시온합섬이 그 전신이다. 시온합섬이 어떤 회사냐면, [[천부교]] 소속 회사, 즉 신앙촌계 회사였다. 소위 개신교에서 말하는 이단과 관련된 곳이다. 즉, 과거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을 개신교에서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딱히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뽑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종교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는 없던 팀이었다. 참고로 시온합섬은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팀은 1974년 횡령 등의 혐의로 회사 대표가 구속되는 등, 경영에 부침을 겪으면서 해체되었다. 이 때 선수들을 모두 새롭게 생긴 [[외환은행]] 농구단에 몰아주면서 외환은행 여자 농구단이 생길 수 있었다. 전성기 시절 대표적인 선수는 강현숙, 방신실, 나현숙이었다. 특히 강현숙은 시온합섬 시절에 팀에 합류해서 훗날 국가대표 명 가드로 이름을 떨치는 이 선수는 시온합섬 팀 창단 1년 만에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등 맹활약했다. 사실 이 팀을 주축으로 구성된 외환은행은 적어도 1970년대 중엽부터 1980년대 초까지는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금융단 팀이 일반 실업팀에게 스카우트비에서 밀리면서 전력 보강에 실패해 1982년 전국체전 우승을 끝으로 점차 추락하기 시작했다. 1983/84 점보시리즈에서 종합 4위를 해 체면치레를 했지만, 이후 농구대잔치에서 3차 대회 문턱도 넘지 못했고, 이를 보다 못해 모기업 노조 측이 팀을 살리기 위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51800329210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5-18&officeId=00032&pageNo=10&printNo=13428&publishType=00020|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사내에서도 '환은농구후원회'가 꾸려졌다. 1995년 12월 농구대잔치 선경증권전에서 [[유영주]]에게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인 55점을 내준 적도 있을 정도로 전력이 정말 좋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들어 은행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스카우트비를 늘리면서 다시 뭔가 시도하려고 했지만 바로 찾아온 IMF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1997년]] 12월에 탁구단과 동반해체되었다. [[외환은행]] 자체도 없어질 위기인 지금, 농구단이 만일 IMF 파고를 넘었더라도 외환은행 이름으로 계속 남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 여자 농구단이 해체되고 [[2012년|15년 뒤]], [[하나금융지주]]는 해체 위기에 직면한 [[신세계(기업)|신세계]] 쿨캣 농구단을 인수하여 [[외환은행]]의 이름이 들어간 여자 프로 구단인 [[부천 하나원큐|부천 하나외환 여자 농구단]]을 창단했다. 여담으로 [[서울은행]]도 [[서울은행 여자 농구단]]을 운영하다가 [[1998년]] 2월에 해체했는데, 우연히도 두 은행이 [[하나은행(1991년)|하나은행]]에 넘어온 후 프로에서 부활한 셈. 대신 현재의 [[부천 하나원큐]]는 신세계 쿨캣의 역사까지 합치면 태평양화학 농구단이 전신이라 계승한 팀이 다르다. [[분류:하나금융그룹]][[분류:대한민국의 해체한 농구단]][[분류:1974년 창단]][[분류:1997년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