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전삼국문)] [목차] == 개요 == 姚信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로 [[육손]]의 외조카. == 상세 == [[장온(손오)|장온]]이 실각하고 이에 연루되어 장온의 동생인 [[장백]]도 폐출되면서 230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했으며, 장백의 아내인 [[육울생]]이 절개를 지키자 육울생의 절개를 표창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궁지쟁]] 때는 태자인 [[손화]]와 가까이 지내 태자파였으며, 육손이 손화를 확실하게 태자로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손권]]이 요신, [[고담(삼국지)|고담]], [[고승(삼국지)|고승]] 등 육손의 인척이 태자에 붙어있다는 것을 빌미로 쫓아내 분사하게 했으며, 요신은 고담, 고승과 함께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와서 태상이 되었고 267년 12월에는 [[맹종(삼국지)|맹종]]과 함께 [[손호]]의 명에 따라 관료와 중군의 보병, 기병 2천 명을 준비해 임금의 시신을 태우는 수레로 동쪽 명릉을 가서 손화의 신주를 맞이했다. 269년에 [[육개]]가 죽기 직전에 올린 상소에서는 [[누현]], [[하소(손오)|하소]], [[장제(손오)|장제]], 곽탁, [[설영]], [[등수#s-2]], [[육희]], [[육항]] 등과 함께 사직의 근간이자 국가의 훌륭한 보좌가 되는 인재로 언급되었다. 저서로는 사위, 요씨신서, 혼천론, 역경의 주석 등이 있다. 후대 수당시대의 역사가인 [[요찰]]과 요찰의 아들인 [[요사렴]]은 요신의 후손이 된다. [[분류:손오의 인물]][[분류:몰년 미상]][[분류:오흥 요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