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12년 출생]][[분류:2005년 사망]][[분류:독일의 축구선수]][[분류:독일의 축구감독]][[분류: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역대 감독]] [[파일:Josef Rasselnberg.jpg]] || 이름 || 요제프 라셀른베르크[br](Josef Rasselnberg) || || 생년월일 || [[1912년]] [[12월 18일]] || || 사망년월일 || [[2005년]] [[2월 9일]] (향년 92세) || || 국적 || [[파일:독일 국기.svg|width=28]] [[독일]] || || 출신지 || [[뒤셀도르프]] ||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 신체조건 || 불명 || || 등번호 || -[*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 || 소속팀 || VfL 벤라트 (1930-1937)[br]아인트라흐트 바트 크라인츠나힘 (1937-1956) || || 국가대표 || 9경기 / 8골 (1933-1935) || || 감독 || 아인트라흐트 바트 크라인츠나힘 (1950-1961)[br][[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1961) || [목차] == 생애[*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 라셀른베르크는 VfL 벤라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1934년 월드컵 지역 예선 [[룩셈부르크 축구 국가대표팀|룩셈부르크]]전에서 4골을 넣은 순간일 것이다. 당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 대표팀]]은 룩셈부르크를 9대1로 대파했는데 여기에 라셀른베르크의 4골이 큰 기여를 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이 기록은 2004년 [[미하엘 발라크]]가 [[몰타 축구 국가대표팀|몰타]]를 상대로 5골을 넣기 전까지 독일 대표팀 내 한 경기 개인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당시 21살의 젊은 공격수 라셀른베르크는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월드컵]]에 출전할 것 역시 확실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진 못했다. 이 부상은 꽤 커서 라셀른베르크를 이후에 반은퇴의 길로 몰아갔다. 1934년 독일 축구 챔피언십에서 벤라트는 라셀른베르크의 부재로 [[FC 샬케 04|샬케]]에 밀려 2라운드에서 탈락했고, 1935년에서야 라셀른베르크는 대표팀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라셀른베르크는 대표팀에서 9경기 출전, 8골의 기록을 남겼다. 1937년부터는 아인트라흐트 바트 크라인츠나힘에서 뛰었고, 전후에 요제프로 이름을 바꾸었다.[* FIFA의 공식 기록 등에도 요제프 라셀른베르크로 이름이 나와 이전 이름은 알려져있지 않다.] 1950년부터는 크라인츠나힘의 [[선수 겸 감독]]이 되었다. 1950년에 은퇴하고 코칭 라이선스를 땄으며 1961년까지 크라인츠나힘에서, 그리고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에서 잠시 감독 생활을 했다. 감독직을 그만둔 후에는 담배 가게를 운영했다. == 수상 == === 클럽 === * 가울리가 니더라인 우승 2회: 1934, 1935(VfL 벤라트) * 서부 독일 협회 컵 우승 2회: 1931, 1932(VfL 벤라트)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