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독일 국방군/장성급 장교)]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Bundesarchiv_Bild_146-1984-018-27A,_Johannes_Friessner.jpg|width=100%]]}}} || ||<:>이름 ||<(>'''Johannes Frießner''' [br] 요하네스 프리스너 || ||<:>출생 ||<(>[[1892년]] [[3월 22일]][br][[파일:독일 제국 국기.svg|width=25]] [[독일제국]] [[작센 왕국]] [[켐니츠]] || ||<:>사망 ||<(>[[1971년]] [[6월 26일]] (향년 79세) [br] [[파일:독일 국기.svg|width=25]] [[서독]] [[바이에른]]주 바트라이헨할 || ||<:>복무 ||<(> [[독일 제국군]], [[프로이센군]](1911년 ~ 1918년) [br] [[독일 국가방위군]](1918년 ~ 1935년) [br] [[독일 국방군]](1935년 ~ 1945년)|| ||<:>최종 계급 ||<(>[[파일:Si_4a.png|width=32]] [[육군]] [[상급대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br] [[독소전쟁]] || ||<:>주요 서훈 ||<(>백엽 기사 [[철십자 훈장]]|| [목차] [clearfix] == 개요 == 1892.3.22.~1971.6.26 독일 국방군의 장군이다. 최종계급은 상급대장이다. 여담으로 독일 국방군의 상급대장 중 가장 어리다. == 생애 == 1892년 3월 22일, 요하네스는 [[독일 제국]]의 [[작센 왕국]] 켐니츠에서 테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건설엔지니어였다. 1911년 독일 제국군에 입대하였으며, 전후에는 국가방위군에 남았다. 1940년 8월 1일에는 소장으로 진급했고, 1942년 5월 1일에는 동부전선에 배치 되어 제 102 보병사단의 지휘관이 되었다. 5개월 뒤 그는 중장으로 진급하였고, 1943년 1월 19일 부터 12월 11일까지 제 23군단을 지휘 하였다. 이후 1944년 2월에 육군 분견대 나르바를 지휘하였고, 7월 1일 상급대장이 되어, 3일뒤 요하네스는 북부집단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후 7월 1일 상급대장이 되었고, 25일 까지 북부집단군의 사령관으로 지냈다. 이후,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후임으로 남부집단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로디온 말리놉스키]] 원수의 공세를 막지 못하여 12월 28일, 해임당했다. 그렇게 프리스너는 전쟁의 끝을 맞았다. 전후 그는 독일병사연맹(VdS)[* 독일연방군은 2004년 VdS와의 모든 협력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접촉도 금지되었고, 2016년 이후 해체됐다.]의 회장이 되었지만, 독일군의 침공을 정당화한 이후 물러나야 했다. 그는 [[폴란드 침공]]을 폴란드에 있는 독일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정당화하였다. 1950년대에는 [[독일 연방군]]의 재건에 영향을 주었고 1960년대에 자신의 회고록을 작성하고 1971년 6월 26일에 죽었다. [[분류:1892년 출생]][[분류:1971년 사망]][[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 제국의 군인]][[분류:독일 국방군/인물]][[분류:독일의 실향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