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북사)] ||<-2> '''안성경후(安城敬侯)[br]{{{+1 尉撥 | 울발}}}''' || || '''시호''' ||경(敬) || || '''작위''' ||개휴현남(介休縣男) → 안성후(安城侯) || || '''성''' ||울(尉) || || '''이름''' ||발(撥) || || '''부친''' ||울나(尉那) || || '''본관''' ||대군(代郡) || [목차] [clearfix] == 개요 == 尉撥,代人也。 == 생애 == 복양태수(濮陽太守)를 지낸 울나(尉那)의 아들로 태어났다. 울발은 태학생이 된 뒤 연주자사(兗州刺史) 나유(羅忸)의 모집에 응하여 진여(陳汝)에서 도적을 격파한 뒤 공을 세워서 개휴현남(介休縣男)에 봉해졌다. 432년, [[북연]]을 정벌할 때 종군하여 호분수(虎賁帥)로 승진하고 천인장군(千人軍將)으로 전임되었다. 435년, 울발은 다시 악평왕(樂平王) 탁발비에게 종군하여 북연을 정벌했다. 울발은 뒤에 양주장군(凉州軍將)으로 임명되어 [[토욕혼]]을 정벌하였다. 이후 토욕혼의 소장이 투항했다가 다시 배반하자, 울발은 기병들을 이끌고 추격하여 모두 사로잡아 돌아왔으며, 전공을 세워서 작위가 자(子)로 올라갔다. 울발은 뒤에 진창진장(晉昌鎭將)이 되어 변경의 백성들을 다독이며 치적을 세웠다. 입조하여 지신감(知臣監)이 되었고 안성진장(杏城鎭將)으로 전출되어 9년 동안 통치에 힘을 서서 [[문성제]]가 울발에게 의복을 하사하였다. [[헌문제]]가 즉위한 뒤 북정도장(北征都將)으로 임명되었다. 뒤에 다시 도장이 되어 현호(懸瓠)를 공격하고 [[송(남조)|유송군]]을 물리쳐서 현호진장(懸瓠鎭將)으로 임명되고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가 더해졌으며, 안성후(安城侯)로 진봉되었다. 현조는 울발을 칭찬하여 다시 의복을 하사하였다. 울발은 뒤에 평남장군(平南將軍), 북예주자사(北豫州刺史)로 전임되었다. 뒤에 낙주(洛州)의 백성 전지도(田智度)가 역모를 꾸미자, 울발은 조정의 칙명에 따라 예주의 군대를 징발하여 낙주자사 구퇴(丘頓)와 함께 전지도를 사로잡아 평성으로 압송하였다. 사후 관군장군(冠軍將軍)으로 추증되고 경후(敬侯)로 추시되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분류:남북조시대/인물]][[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