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위(춘추시대) 군주)] |||||| '''{{{#ece5b6 위(衛)나라 2대 국군[br]{{{+1 강백}}}[br] 康伯}}}''' |||||||||| |||| '''[[성씨|{{{#ece5b6 성}}}]]''' ||희(姬) || |||| '''[[본관|{{{#ece5b6 씨}}}]]''' ||위(衛) || |||| '''[[휘|{{{#ece5b6 휘}}}]]''' ||무(牟)[* 아래에 나오듯이 懋자와 통자라고 나왔기 때문에 무라 발음한다.] || |||| '''{{{#ece5b6 아버지}}}''' ||[[위강숙]](衛康叔) 희봉(姬封)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주나라]]의 제후국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의 제2대 [[군주]]. [[위강숙]]의 아들. [[위고백]]의 아버지. 초주의 고사고에 의하면 위 모백(衛牟伯)이라고도 한다. 달리 왕손 모라고도 한다.[* 그는 [[주문왕]](周文王)의 손자다.] 양관에 따르면, 서주 시대 청동기 명문에 백무(伯懋)라고 등장하는데, 당시 힘쓸 무(懋) 자와 소 울음소리 모(牟) 자가 음이 같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것을 통자(通字)라고 한다.][* 위의 표의 휘 부분에 보면 알 수 있듯이 牟자에는 무의 음가를 쓰는 경우도 있으므로 휘를 무라고 적은 것이다.] == 생애 == 그는 아버지인 위 강숙의 가르침에 따라 성실하게 정무를 돌보아 위나라를 흥성하게 했다.[* 당시 위나라는 주나라와 가깝고 교통이 발달해 문화가 흥성했으며, 당시에는 왕권이 센 만큼 그 버프도 있어 초기에는 제법 강력한 제후국이었다.] 정치를 통해 사람들을 화목하게 해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했다.[* 다소의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그만큼 잘나가는 시기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리고 동이족[* 당시에 회하 동쪽에 살던 이민족을 동이라 칭했다. 즉 한국이나 일본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시대마다 변하는 개념이니 말이다.]의 반란을 진압해 주 왕실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제정공]], [[진후섭]], [[노태공]]과 함께 [[주강왕]]을 모셔 성강지치(成康之治)를 이룩했다. 그가 죽고 아들인 위 고백이 뒤를 이었다.[* 위 고백은 이름이 실전되었다.] [각주] [[분류:위(衞)나라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