衛文昇 (? ~ 618) [[수나라]]의 인물. 본명은 위현(衛玄)이지만 주로 자인 현승을 사용했다. [[낙양]] 사람으로 수나라가 건국되자 회주총관이 되었고 이후 위위소경을 지내다가 601년에 자주자사에 임명되어 대뢰진을 공격한 요족들을 설득해 10여만 명을 항복시켰으며, 그 공으로 비단 2천필을 받고 겨울 11월 12일에는 수주총관이 되었다. 612년에 형부상서를 지내면서 [[고구려]] 원정에 참가했다가 [[수양제]]의 명령으로 [[유사룡]]과 함께 [[랴오허|요하]] 동쪽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10년의 부세를 면제하고 군현을 설치해 관할하게 했으며, 검교우어위호분랑장이 되어 증지도에서 군사를 이끌고 출발해 다른 장수들과 압록수 서쪽에 합류했다. [[살수대첩]]에서 다른 장수들이 모두 크게 패했을 때 홀로 온전해 금자광록대부에 임명되었으며, 613년에는 형부상서와 경조내사를 겸하여 서경을 지켰다. 고구려 원정을 틈타서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 4만을 인솔해 동도를 구원했고 양현감을 진압에 힘쓴 공으로 상을 받았으며, 617년에는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당고조|이연]]이 장안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다가 병이 나서 정사에 참여하지 않다가 이후 사망했다. [[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618년 사망]][[분류:뤄양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