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위(춘추시대) 군주)] |||||| '''{{{#ece5b6 위(衛)나라 33대 국군[br]{{{+1 후장공}}}[br] 後莊公}}}''' |||||||||| |||| '''[[성씨|{{{#ece5b6 성}}}]]''' |||| 희(姬) || |||| '''[[본관|{{{#ece5b6 씨}}}]]''' |||| 위(衛) || |||| '''[[휘|{{{#ece5b6 휘}}}]]''' || 괴외(蒯聵) || |||| '''{{{#ece5b6 아버지}}}''' |||| [[위영공]](衛靈公) 희원(姬元) || |||| '''{{{#ece5b6 어머니}}}''' |||| 남자(南子) || |||| '''{{{#ece5b6 아들}}}''' |||| [[위출공]](衛出公) 희첩(姬輒)[* 전 군주가 아들인 특이한 사례다.][* 왜 이런 꼴이 났는지는 후술.]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478년[* 사기에는 그의 최후에 대해서 기록이 없지만, 춘추좌씨전에는 기록이 남아있다.]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480년 ~ 기원전 478년 || [목차] [clearfix] == 소개 == [[중국]] [[춘추시대]]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의 제33대 [[군주]]. [[위영공]]의 아들. [[위출공]]의 아버지. 복위가 아닌 아버지임에도 아들보다 후대의 군주가 된 지극히 특이한 사례를 남겼다. [[위장공]]과 구분하기 위해 위 후장공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한서]](漢書)에는 위 간공(衛簡公)으로 기록되어 있다. == 생애 == === 세자 시절 === 그는 세자 시절에 [[남자(동음이의어)|남자]](南子) 부인의 음란무도함을 미워해[* 이것으로 보아 남자가 친어머니가 아닌 듯 하다.] 남자를 살해하려 했으나 일이 누설되는 바람에 위 영공의 분노를 사자 송나라로 달아났다가 [[진(춘추오패)|진(晉)나라]]의 실권자인 [[조간자]](趙簡子) 조앙(趙鞅)에게 달아났다. 위 영공 42년(기원전 493년), 위 영공이 막내 아들 영을 세자로 세우려 했으나 실패하고 병으로 죽었다.[* 자세한 사항은 [[위영공]] 문서 참조.] 그리고 남자가 영을 세우려고 했으나 영은 끝끝내 거절했다. 그리하여 실패하고 세자 괴외의 아들을 세우니 그가 바로 [[위출공]]이다. 조앙은 양호(陽虎) 등과 함께 세자 괴외를 세우려고 했으나 위나라의 대부들이 그것을 완강하게 막으니 조앙의 무리는 물러났다. === 드디어 즉위하다 === 위 출공 12년(기원전 481년), 공리(孔悝)의 어머니 백희(伯姬)는 세자 괴외를 세우려 했다. 공리는 위 출공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고 제나라로 달아났다. 그리고 그 아버지 세자 괴외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위 후장공이다. 그는 즉위 후 자신을 막은 위나라 대부들을 전부 죽이려 했으나 신하들이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그만 두었다. 위 후장공 원년(기원전 480년), 위 후장공은 남자(南子)를 죽였다. 그리고 둘째 아들인 질(疾)을 세자로 삼았다. 위 후장공 2년(기원전 479년), [[노나라]]의 성인(聖人) [[공자]](孔子)가 죽었다. === 폐위가 된 이후 === 위 후장공 3년(기원전 478년), 위 후장공이 혹독한 정치로 백성들에게 원성을 샀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진나라를 배신하자, 조간자 조앙이 이끄는 진나라 군대가 위나라를 공격했고, 이에 당해내지 못할 것을 알던 위 후장공은 달아나니 사람들이 그 친척 동생인 [[위군반사|위군 반사]]를 세웠다. 위 후장공은 융주(戎州)로 도망갔고, 융주에 살고 있는 이민족을 보고서 위후장공이 말했다. "[[오랑캐]]가 왜 여기에 있느냐?" 그리고 융주를 없애버렸다. 위 후장공이 융주에 있는 장인들을 혹사시켜서 원성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구경 석포(石圃)를 제거하려고 하였지만, 석포가 미리 손을 써서 장인들과 융주의 융인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서 융주에서 위 후장공을 몰아냈다. 위 후장공 일행이 도주하는 중에 세자 질(世子疾)과 공자 청(公子靑)이 융인들에게 살해당하고, 위 후장공은 홀로 달아나다가 융주의 기씨(己氏)의 집에 숨어있다가, 집주인 기씨에게 벽옥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살려주면 벽옥을 주겠다고 하였지만, 기씨는 벽옥이 어차피 내 것이 되는데 무슨 상관이라면서 위 후장공을 살해하였다. [각주] [[분류:위(衞)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478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