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송서)] [include(틀:남사)] ||<-2> '''건평선간왕(建平宣簡王)[br]{{{+1 劉宏 | 유굉}}}''' || || '''시호''' ||선간(宣簡) || || '''작호''' ||건평왕(建平王) || || '''성''' ||유(劉) || || '''이름''' ||굉(宏) || || '''자''' ||휴도(休度) || || '''부모''' ||부황 [[문제(유송)|문제]][br]모후 첩여 조씨 || || '''생몰''' ||434년 ~ 458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북조시대]] [[송(남조)|유송]]의 황족으로 자는 휴도(休度). == 생애 == [[문제(유송)|문제]]의 7남으로 모친은 첩여 조씨(曹氏)였으며, 444년에 건평왕으로 책봉되었다. 유유하고 순박한 성격으로 문헌을 좋아했다. 문제는 유굉을 남달리 총애하여 계롱산(鷄籠山)에 유굉의 저택을 세웠다. 또한 건평국 관리들의 직계는 다른 봉국보다 한 단계 높았다. 447년, 중호군으로 임명되고 석두수사(石頭戍事)를 겸하였으며, 뒤에 정로장군, 강주(江州) 자사로 전출되었다. 451년, 입조하여 중서령으로 임명되고 효기장군을 겸하였다. 453년, [[유소(유송)|유소]]가 문제를 시해하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했다. 이때 유굉은 좌장군, 단양윤으로 임명되었다가 다시 산기상시, 진군장군, 강주 자사가 되었다. 유소의 아우인 유준이 유소를 토벌하고자 거병할 때 유소가 유굉을 궁으로 불러들이려고 했는데, 유준이 유굉에게 먼저 편지를 보냈고 유굉은 측근인 주법도(周法道)를 유준에게 파견했다. 유준은 유소를 시해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제4대 황제인 [[효무제(유송)|효무제]]이다. 효무제가 즉위한 뒤 유굉은 상서좌복야로 임명되고 건강에서 효무제의 모친을 맞아들였으며, 이후 중서감, 중군장군이 더해졌다. 455년, 상서령으로 전임되고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456년, 중서감, 위장군이 더해졌다. 458년, 병이 심해져서 상서령에서 물러나려고 했고 개부의동삼사, 산기상시가 더해졌으며, 같은 해에 사망하여 사도, 시중으로 추증되고 선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렇게 죽은 게 20대 중반이다.(...) 참고로 이름의 한자가 후한 영제와 같다(...) [[분류:송(남조)/황족]][[분류:434년 출생]][[분류:458년 사망]][[분류:팽성 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