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북사)] ||<-2> '''서평공왕(西平恭王)[br]{{{+1 乙瑰 | 을괴}}}''' || || '''시호''' ||공(恭) || || '''작위''' ||서평군왕(西平郡王) || || '''성''' ||을(乙) || || '''이름''' ||괴(瑰) || || '''부친''' ||을필지(乙匹知) || || '''본관''' ||대군(代郡)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위]]의 장수. 본관은 대군(代郡)으로 을불부(乙弗部) 출신. == 생애 == 을괴의 조상은 대대로 부락을 거느렸으며, [[태무제]] 때 을괴의 아버지인 을필지(乙匹知)는 북위의 위엄과 교화를 흠모하여 을괴를 북위로 보내 조공을 바쳤고 태무제는 을괴를 조정에 남겼다. 을괴는 기마술과 궁술을 잘 했지만 궁술에 특히 뛰어났으며, 맨손으로 맹수와 격투를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뛰어났다. 을괴는 태무제의 정벌에 몇 차례 종군하여 태무제로부터 신임을 받았고 태무제의 딸인 상곡공주(上谷公主)에게 장가를 들어 진남장군(鎭南將軍),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임명되고 서평군공(西平郡公)에 봉해졌다. 을괴는 태무제의 남정에 종군하여 사지절(使持節), 도독전봉제군사(都督前鋒諸軍事)로 제군되었다. 을괴는 항상 선봉에서 전투를 벌여서 그 용맹함이 삼군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을괴는 뒤에 시중(侍中), 정동장군(征東將軍), 의동삼사(儀同三司), 정주(定州) 자사로 제수되고 작위가 왕(王)으로 올라갔으며 서도도장(西道都將)을 역임하였다. 을괴는 화평(和平) 연간[* 460년 ~ 465년]에 죽어서 태위공(太尉公)으로 추증되고 공(恭)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분류:남북조시대/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