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怡隆洋行 [[영국]] 국적의 아일랜드계 영국인인 [[조지 루이스 쇼]]가 세운 무역회사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의 사무소가 이곳에 설치되어 독립운동 자금 수합처가 되기도 했다. == 설립 == 1900년 한국의 금광에서 회계로 일했던 [[조지 쇼]]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1907년 [[청나라]] [[봉천성]] 봉황청(鳳凰廳) [[단둥시|안동현]](安東縣)으로 옮겨서 무역회사인 이륭양행을 설립한다. 조지 쇼는 아버지의 고향인 [[아일랜드]]가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고 1919년에는 [[아일랜드 독립 전쟁]]을 벌였기에,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의 항일운동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조지 쇼는 자회사인 이륭양행을 통해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고, 백범 김구가 상해로 망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륭양행을 통해서였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의친왕]]의 망명 시도도 이륭양행을 통해서 시도되었다. == 독립운동가의 거점 ==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륭양행의 2층에 [[교통국]] 지부를 두었다. 이를 통해 이륭양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줄 역할은 물론 독립운동가의 거점으로 역할을 하였다. 독립운동가 [[김산]]의 기록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위험할 때는 단둥에 있는 조지의 집에서 숨었으며, 이륭양행을 통해 의열단 거사에 쓸 폭탄 200여개를 조선으로 반입하는 선적 과정 자체를 조지 쇼가 직접 상하이에서 감독했다는 등의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 와해 ==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괴뢰국인 [[만주국]]을 수립하면서 이륭양행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일제는 괴뢰국인 만주국과의 합작으로 이륭양행을 파산으로 내몰기 위해 대안기선공사라는 어용 선박회사를 설립하였다. 이로 인해 대안기선공사와 경쟁을 벌이게 된 이륭양행은 점차 경영난에 봉착하였고, 결국 조지 쇼는 1935년 이륭양행을 대안기선공사에 매도하면서 이륭양행은 와해된다. == 여담 == 독립운동가 [[김산]]은 조지 쇼를 두고 '''그는 아일랜드인 테러리스트인데 일본인을 거의 영국인만큼이나 싫어했다'''(...)고 썼다.[* 물론 여기서 쓴 테러리스트라는 표현은 김산의 진술을 미국의 작가 님 웨일스(Nym Wales)가 번역하면서 차용한 것으로, 전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번역에는 일관되게 독립운동가들도 한국인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하기 때문. 엄밀히 말하면 번역을 거쳤으므로 김산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저렇게 말한 것은 아닌 셈.] [[분류:1907년 기업]][[분류:1935년 해체]][[분류:대한제국의 단체]][[분류:무단 통치기/단체]][[분류:문화 통치기/단체]][[분류:한국의 독립운동 단체]][[분류:무역 회사]][[분류:한중관계]][[분류:한국-아일랜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