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 '''[[1904년|{{{#fff 1904년}}}]] [[노벨생리의학상|{{{#fff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 ||<-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220]] || ||<-5> [[노벨생리학·의학상/수상자|{{{#fff '''수상자 전체 목록 보기'''}}}]] || || 1903년 ||<|2> → || 1904년 ||<|2> → || 1905년 || || 닐스 뤼베르 핀센[* 심상성 낭창 치료법 개발.] ||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발견.] || ||<-2> '''{{{+1 이반 파블로프}}}[br]Ива́н Па́влов | Ivan Pavlov'''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545px-Ivan_Pavlov_NLM3.jpg|width=100%]]}}} || || '''본명'''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br]Ива́н Петро́вич Па́влов[br]Ivan Petrovich Pavlov|| ||<|2> '''출생''' ||[[1849년]] [[9월 26일]]|| ||[[러시아 제국]] [[랴잔]]|| ||<|2> '''사망''' ||[[1936년]] [[2월 27일]] (향년 86세)|| ||[[소련]]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러시아 제국)] → [include(틀:국기, 국명=소련)]|| || '''직업''' ||생리학자, 심리학자, 의사|| ||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 '''수상''' ||노벨생리의학상 {{{-2 (1904)}}}[br]왕립학회 외국인 회원 {{{-2 (1907)}}}[br]코플리 메달 {{{-2 (1915)}}}|| || '''종교''' ||[[무종교]]([[불가지론]])[* "... Although Pavlov held to scientific agnosticism" /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Ivan-Pavlov|Ivan Pavlov: Russian physiologist]]",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목차] [clearfix] == 개요 == [[러시아]]의 [[심리학]] 및 생리학자로, "[[고전적 조건형성|파블로프의 개]]"로 유명하다. == 생애 == [[1879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화학 및 생리학을 전공. 이후 의학 아카데미에 진학하여 의사면허를 취득하였다.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라이프치히]]와 [[브레슬라우]]에서 유학하였으며, 이후 귀국하여 [[러시아 제국 육군]] 군의관 및 육군 군의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본래는 평범한 중진 생리학자였으나[* 화학, 생리학, 의학 모두 대학 졸업 성적은 톱이었다.], 실험에 쓸 개에게 먹이를 주던 [[조교]]가 언제부턴가 이 개가 미리부터 침을 흘리고 있더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남들이라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며 넘겼을지 모르지만, 파블로프는 생리학자로서의 안목을 통해 이 현상의 중요성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심리학]]의 운명이 바뀌었다. 여기서부터 그는 "[[조건반사]]"라는 유명한 개념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였다. 매일 그가 기르던 애완견에게 음식을 줄 때마다 종을 울려서 종소리 = 음식이라고 개에게 조건을 부여한 다음, 먹이를 주지 않고 종만 울려도 개가 먹을 것을 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침을 흘린다는 것. 자세한 내용은 [[고전적 조건형성]] 참고. 침의 분비는 외부에서 발자국 소리나 종소리와 같은 정보가 입력될 때 이 정보가 대뇌로 전달되면 대뇌의 기능에 의하여 침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의 연구결과는 조건반사라는 개념을 낳았으며, 뇌신경계통과 소화계통이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 주었다. 그는 소화가 일어나는 생리작용에 대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1904년]] [[노벨생리학·의학상|노벨 생리의학상]]을 [[노벨생리학·의학상/수상자#s-1|수상]]하였다. 파블로프는 [[사회주의자]]도 아니었고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들어선 [[소련]] 정부는 파블로프의 심리학 이론을 '''생리학적 [[유물론]]'''이라며 매우 높게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1921년]] 파블로프에게 식량 배급 등 특수한 권리를 부여하는 칙령에 서명했으며, [[스탈린]] 시대에 파블로프의 이론은 다른 심리학적 사조들을 제치고 [[1950년대]]까지 최상의 권위를 누렸다. 정작 [[마르크스주의]]적 심리학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던 [[비고츠키]]는 [[관념론]]자라면서 냉대받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스탈린이 세상을 떠난 뒤로 파블로프의 이론은 점차 세력을 잃었으며, 비고츠키의 제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분류:러시아의 심리학자]][[분류:러시아의 의사]][[분류:러시아의 생물학자]][[분류: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분류:1849년 출생]][[분류:1936년 사망]][[분류:랴잔주 출신 인물]][[분류: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