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ابن كثير, Ibn Kathir ([[1300년]] ~ [[1373년]]) [[이슬람]]의 율법학자로 오늘날 가장 권위있는 쿠란 주해서를 낸 저자이자 이슬람 역사학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본명은 '이마두딘 아불피다 이스마일 빈 우마르 빈 카시르 빈 다우 빈 디르 알쿠라시 알하슬리 알부스라위 아디마슈키 아샤피이(عمادُ الدين أبو الفداء إسماعيل بن عُمر بن كثير بن ضَوْ بن درع القرشي الحَصْلي البُصروي الدمشقي الشافعي)'이다. 이 가운데 이마두딘(신앙의 기둥)은 [[라캅|라카브]], 아불피다(피다의 아버지)는 [[작명#s-5|쿤야]]에 해당한다. == 생애 == [[시리아]]의 부스라에서 태어났으며, [[다마스쿠스]]에서 이슬람 신학자로 활동하던 이븐 타이미야의 제자가 되었다. 이븐 카시르 본인은 [[샤피이파]]의 아타리 신학을 따르는 편이었으나 [[한발리파]]의 [[이븐 타이미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븐 타이미야는 이슬람 사변 철학자들과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 걸로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한발리 법학파가 아닌 학자들도 이븐 타이미야의 어록과 저술을 읽는게 대세였다고 한다.] 이 덕분에 그의 [[쿠란]] 주해서에서는 근본주의적인 색체가 강한 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피즘]]을 싫어한 이븐 타이미야의 영향 덕분에 그의 역사서는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많이 제거되는 순기능도 있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이븐 카시르의 역사서들은 철저한 고증에 바탕을 둔 명저로 평가받는다. 그의 저작들은 범위가 천지창조부터 심판의 날, 이스라엘인 예언자들의 이야기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이야기, 꾸란이 기록되던 당시의 자세한 시대상황 같은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역사학보다는 [[신학]]이나 [[비교종교학]]에 해당할 만한 내용이 더 많지만, 여타 선배 이슬람 역사가들의 저서들을 자세하고 분석하고 비교한 내용도 기록해 놓은 덕택에 사료로써의 가치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근본주의]] 성향을 가진 학자였지만,[* 역사서 서술 중간중간에 [[유대인]]을 저주하는 문장을 집어넣는다던지...] [[유대교]]와 [[기독]]교 관련 사료들도 꼼꼼하고 충실하게 참고한 역사서술로도 유명한 학자이다. 그러나 오늘날 출간되어 보급되는 영어판 판본에는 현대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와하브파]] 학자들이 아랍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와중에 유대교와 기독교 관련 사료를 인용한 내용 중 많은 양이 잘려나갔다. 아랍어 축약판도 마찬가지인 모양. 서기 [[313년]]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대해서 중세에서 기독교권이나 이슬람권이나 한결같이 찬양 일색이던 당시, 이븐 카시르가 후에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자들이나 [[에드워드 기번]]보다도 콘스탄티누스를 극딜한게 눈여겨볼만한데, 그의 저작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정치적인 이유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언급하고 미트라교 신앙과 기독교 신앙 사이에서 이중신앙 생활을 한 점에 대한 냉철한 비평도 읽어볼 수 있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과 그로부터 수십년 후 기독교 국교화[* [[테오도시우스]] 황제 항목 참조.] 이후 헬게이트를 경험한 유대인 역사학자들의 기록을 이븐 카시르가 꼼꼼히 참고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쿠란 주해서에는 하디스에는 없지만 대신 앗 타바리의 역사서와 쿠란 주해서에는 기록된 내용들도 상당수 실려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쿠란의 8장 31절 주석에 나오는 나디르 알 하리스의 일화가 있다. [[니샤푸르]]에서 의학을 배워와서 [[메카]]에 병원을 차린 나디르 이븐 알 하리스(Nadhir Ibn Al Harith)는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포교할 때 잠자코 듣고 있다가, 무함마드의 설교가 끝나면 그 자리에 있던 아랍인 청중들에게 카야니아 왕조[* 페르시아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왕조] 연대기에 나오는 에스판디야르 왕이나 [[루스탐]] 신화를 들려준 후 "여러분, 무함마드와 나 중에서 누가 더 재밌는 '''우화'''를 말했다 생각하십니까?”라고 말하며 공개적으로 무함마드의 포교를 방해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나디르는 [[바드르 전투]] 때 패배하며 포로로 잡혔는데, 다른 쿠라이쉬 포로들의 경우는 관대한 처우가 내려졌던 것과 반대로 나디르는 무함마드 앞에서 바로 참수당했다는 이야기이다. 하디스 수집가들은 아마 상술한 일화에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아닌 이방 종교 신화 관련한 내용이 있어서 누락한 것으로 보이지만, 타바리는 해당 일화 관련한 기록을 책에 남겼고, 후대 학자인 이븐 카시르 역시 타바리의 견해를 받아들여 해당 일화를 쿠란 주석서에 기입하였다. == 여담 == 생애 말년에는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도 하디스 분류 작업을 했다. 당시 주변 제자들이 하디스를 읽어주고 대신 필사해준 것도 있지만, 그 자신이 평생 이슬람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쿠란 전체와 상당 분량의 하디스를 통체로 암송한 상태여서 실명한 상태에서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각주] [[분류:역사가]][[분류:1300년 출생]][[분류:1373년 사망]][[분류:다라 주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