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대한민국의 배우, rd1=이세희(배우), other2=1박 2일 PD, rd2=1박 2일/스태프)] [목차] == 개요 == 서유영이 쓴 [[야사(역사)|야사]]집 금계필담에 등장하는 인물. [[세조(조선)|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맏딸로 등장한다. == 작중 내역 == 아버지인 세조가 [[단종(조선)|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것에 반감을 품어 내쫓긴다. 정희왕후는 딸을 가엽게 여겨 세조 몰래 세희를 [[충청북도]] [[보은군]]으로 보내서 살게 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한 총각과 알게 되어 결혼을 한다. 부부는 서로 자신의 정체를 숨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김종서(조선)|김종서]]의 손자로, [[계유정난]] 당시 세조에 의해 김종서 일가가 멸문했지만 멀리서 유학하고 있어서 몸을 피신했던 덕에 다행히 살아남았던 것. 부부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헤어지지 않고 동굴에 숨어 살았으나, 세월이 지나 과거의 일을 후회한 세조에게 용서와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세조가 그들을 정식으로 공주, 부마로 받아들이려고 찾아가자 부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찾을 수 없었다. 이세희와 그녀와 결혼한 김종서의 손자가 실존인물이었을 가능성은 낮다. 정사에 기록된 세조의 딸은 [[의숙공주]]뿐이며, 왕실 족보인 선원록이나 [[조선왕조실록]]에서 또다른 딸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계유정난 후 김종서의 후손은 모두 노비가 되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유학 중이어서 화를 피한 손자의 이름도 찾을 수 없다. 김종서의 본관인 [[순천 김씨]]에도 금계필담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는 하지만 기록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인지]]가 지은 소헌왕후의 영릉 지문에는 [[수양대군]]이 윤씨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1남은 장남인 [[의경세자]]이고 2녀 중 한 사람은 의숙공주겠지만, 나머지 딸의 정체가 불분명하다.[* 女皆幼라고 되어 있는데 의숙공주가 1441년생이니 1446년 당시 5살이다. 둘 다 어리다고 했으니 이 미상의 딸은 의숙공주보다 언니라 한들 의경세자(1446년 당시 8살)보다 많았을리는 없었을테니 6~7살이었을 것이고 의숙공주보다 동생이라면 나이의 하한선은 1살부터 4살까지 넓어진다.] 반면 1450년 작성된 세종대왕의 행장에서는 수양대군과 윤씨의 자녀가 2남 1녀라고 기록된다. 아들이 두 명이 된 것은 [[예종(조선)|예종]]이 태어난 이후[* 소헌왕후는 1446년 승하, 예종은 1450년 1월 출생, 세종은 1450년 2월 승하.]라서지만 딸 한 명의 존재가 사라진 것. 이를 두고 세조에게는 수양대군 시절 딸 두 명이 있었으나 왕위에 즉위한 후 내친 딸을 공주로 책봉하지 않고 존재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1450년 세종의 승하 시점에 수양대군은 그저 왕자 1일 뿐이었다. 고로 이 정황은 딸 하나가 일찍 죽은 것이 아닌가란 추정을 제시할 수 있다.[* 의숙공주와 예종의 터울이 9살인데 이 정도 간극이라면 이 사이 조졸한 자녀가 있지 않을까란 추측은 충분히 해봄직하다.] 당시에는 왕의 자식이라도 아버지가 왕위에 즉위하기 전에 죽으면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지 않는 일은 흔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태종(조선)|태종 이방원]]에게도 [[양녕대군]] 위로 세 명의 적자가 있었으나 태종이 왕위에 즉위하기 전에 죽어 대군으로 봉해지지 않았으며, 기록에서도 태종의 적자는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 4남뿐이다.] == 그 외 == 2011년 계원필담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방송되었으며, '이세령'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여기에선 분노에 극이 달한 세조가 세령의 기록을 없애는 것으로 나온다. [[분류:조선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