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영국의 발명가]][[분류:1806년 출생]][[분류:1859년 사망]][[분류:영국의 건축가]][[분류:영국의 공학자]][[분류:포츠머스 출신 인물]][[분류:프랑스계 영국인]] [include(틀: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 ||<-2> '''FRS MInstCE[br]{{{+1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br]Isambard Kingdom Brunel'''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502px-Robert_Howlett_(Isambard_Kingdom_Brunel_Standing_Before_the_Launching_Chains_of_the_Great_Eastern),_The_Metropolitan_Museum_of_Art_(cropped).jpg|width=100%]]}}} || ||<|2> '''출생''' ||[[1806년]] [[4월 9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햄프셔주]] [[포츠머스(영국)|포츠머스]]|| ||<|2> '''사망''' ||[[1859년]] [[9월 15일]] (향년 53세)||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 '''직업''' ||공학자|| || '''신장''' ||152cm[* Pamela Parkes, "[[https://bbc.com/news/uk-england-bristol-43323013|Isambard Kingdom Brunel: The engineering giant with 'short man syndrome']]", 「BBC」, 2018.3.23.]|| || '''학력''' ||앙리 4세 고등학교[br]캉 노르망디 대학교|| || '''배우자''' ||메리 엘리자베스 호슬리 ^^(1836년 결혼 / 1813–81)^^|| || '''자녀''' ||이점바드 브루넬 주니어 ^^(1837–1902)^^[br]헨리 마크 브루넬 ^^(1842–1903)^^[br]플로렌스 메리 브루넬 ^^(1848–1876)^^[br]성명미상 1녀 ^^(?–? / 요절)^^|| || '''서명''' ||[[파일: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서명.svg|width=150&bgcolor=#fff]]||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제1공화국|혁명정부]]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TBM]]의 개발자이기도 한 마크 이점바드 브루넬(Marc Isambard Brunel, 1769–1849)[* [[런던 지하철]]에서 아직도 이용되고 있는 [[템스강]]의 [[해저터널|하저터널]]을 지은 사람이다.]의 아들로, 영국의 가장 위대한 [[공학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영국에서는 단순한 공학자 수준이 아니라 그가 [[엘리자베스 1세]], [[윌리엄 셰익스피어]]보다 더 위대하게 꼽힌다는 설문조사가 있다. 즉, BBC가 조사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 중 2위를 차지한다. 영국은 [[산업 혁명]]의 시초인 나라인만큼 공학자도 매우 명예롭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폭약]]을 이용한 [[터널]] 개발을 최초로 주도했고,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기선을 설계했고, [[광궤]] 철도를 만들었으며[* 물론 생전에 [[표준궤]]에 밀렸다.], [[현수교]](클리프턴 현수교)를 처음으로 설계했다. == 업적 == === 토목왕 === [[토목공학]]에서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복스 터널과 메이든헤드 다리[* 세계에서 가장 평평한 [[벽돌]] [[아치(건축)|아치]]다.], 쳅스토 & 살타시(로열 앨버트) 다리, 위에서 언급된 클리프턴 현수교이고, 모두 잉글랜드에 있다. 또한 다리의 교각기초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압축공기 잠함을 사용함으로써 수중이나 지하건축물에서 압축공기 기술이 받아들여지는 데 이바지했다. [[런던]] [[패딩턴 역]]에 그의 동상이 있으며, 런던–[[브리스톨]] 간을 잇는 [[Great Western Railway|그레이트 웨스턴 철도]]는 그가 놓았던 사철이다. 불과 27세의 나이에 책임자가 되어 공사를 완료시켰다. 그가 생애 동안 놓은 철도는 총 연장 3200 km라고 한다. 하지만 이쪽으로는 업적에 비해 유명세가 낮은 편인데, 그보다 한 발 앞서서 "[[철도]]"라는 근대적인 교통수단을 창조하다시피 한 [[조지 스티븐슨]]이 있기 때문이다. 브루넬도 이쪽에 끼친 업적이 적지 않지만 조지 스티븐슨의 업적이 워낙에 대단해서 밀린 케이스. === 기계왕 === [[기계공학]]에서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기선(선박)|증기기관선]] 건조'''다. 그의 3부작은 '''그레이트 웨스턴호'''(1837), '''그레이트 브리튼호'''(1843), '''그레이트 이스턴호'''(1858)로, 3척 모두 진수할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oseph_Walter_-_The_'Great_Western'.jpg|width=600]] * 목제 외륜증기선인 '''그레이트 웨스턴호'''는 정기적으로 대서양 횡단 운항을 한 최초의 기선. [[파일:external/www.ssgreatbritain.org/1843.jpg|width=600]] * 강철선체 기선인 '''그레이트 브리튼호'''는 스크류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최초의 대형선박이었다. 하지만 대서양 이상의 항로에서는 연료를 추가 공급 받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파일:external/www.ikbrunel.org.uk/GreatEasternengraving.jpg|width=600]] *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외륜과 스크루로 추진되었으며, 2중 강철선체로 된 최초의 선박이었다.[* 이스턴 해운회사와 그레이트 선박회사의 배.] 진수(進水)할 당시 이 배는 배수량 18,914t, 길이 211m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선박이었다. 속력을 14.5Kn(노트:시속 27㎞)까지 올리고 추진장치들을 번갈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외륜 엔진 2개와 스크루 엔진 2개, 돛대 6개를 달았다. 1889년 해체되었으나 1898년까지 40년간 가장 큰 선박[* 당시 두번째로 큰 선박보다 4배나 커서 중간 급유가 필요 없었다고 한다.]이었던 그레이트 이스턴은 [[뉴욕]]-런던([[리버풀]]), 런던-[[인도]]를 오갔다. 특히 [[파리(프랑스)|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대서양을 오간 1867년의 항해는 유명해서, SF 소설가 [[쥘 베른]]도 이 배를 탑승하고 '''"떠 있는 도시(Une Ville flottante)"'''라는 글을 썼다. 사실 이 배는 당시 너무 큰 배수량에 인한 적자운용으로 여객선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배가 해체된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 타이틀을 가져온 시티 오브 뉴욕호의 배수량은 10,500t에 불과했다. 길이로 봤을 땐 1899년 진수된 오셔닉 호가 약 4m 길었지만 배수량은 1700t 가량 적었으며, 배수량까지 포함하면 1901년 진수된 켈틱 호까지 와서야 그레이트 이스턴호의 크기를 넘게 된다.], 1874년 [[전신]]을 위한 대서양 해저 [[케이블]]을 성공적으로 설치하여 명성을 얻었다. 현재 그레이트 이스턴호의 톱 마스트는 1891년 [[리버풀 FC|FC 리버풀]]이 창설될때 [[http://www.peoples-stories.com/story.php?i=7LMBHJQTFC|그들의 깃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크림 전쟁]]에서 [[대포]]를 개량하고, 조립식 병동이나 장갑거룻배([[장갑함]])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 기타 == * [[파리(프랑스)|파리]]의 한 교량을 보고 "물고기 밥이 되기 싫다면 저 다리를 건널 시도 따위는 하지 마라." 라고 말했고, 며칠 뒤 그 교량은 스스로 붕괴했다는 설화가 존재한다. 그만큼 뛰어난 공학자임을 증명하는 일화다. * 키가 152cm로 매우 작았다. 자신의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는지 20cm 짜리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무대극을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브루넬이다. 스토리가 [[산업 혁명]]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배우 [[케네스 브래너]]가 그의 역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