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리비아의 대외관계)] [include(틀:이집트의 대외관계)] || [[파일:리비아 국기.svg|width=100%]] || [[파일:이집트 국기.svg|width=100%]] || || [[리비아|{{{#fff '''리비아'''}}}]] || [[이집트|{{{#fff '''이집트'''}}}]] || [목차] == 개요 == [[리비아]]와 [[이집트]]의 관계. == 역사적 관계 == === 고대 === 리비아 동부 [[키레나이카]] 지방은 예로부터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대에는 리비아 출신의 인물이었던 [[프수센네스 1세]]가 [[이집트 제21왕조]]의 파라오가 되기도 했었다. 또한 [[이집트 제22왕조]]의 파라오 중 하나인 [[셰숑크 1세]] 역시 리비아인이었다. 22왕조를 비롯해 [[이집트 제23왕조]], [[이집트 제24왕조]] 모두 리비아 계통이었다. [[로마 제국]]이 들어오면서 이집트와 리비아는 둘 다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고, [[동로마 제국]]이 [[7세기]]에 이슬람 세력에게 북아프리카를 빼앗길 때까지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 === 중세 === 중세시대에는 아랍 제국의 점령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아랍화가 진행되었다. 이후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발흥한 시아파 [[이스마일파]] 계열 [[파티마 왕조]]가 리비아를 거쳐 이집트 일대를 장악하면서 이집트를 본진으로 삼게 되었다. 한 편 북아프리카의 이스마일파는 타 이슬람 종파들에 비교적 관용적인 편이었고, 리비아 일대의 [[순니파]]들은 이웃한 알제리나 튀니지 등과 마찬가지로 [[말리키파]] 마드하브가 우세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순니파 사회 사이에서는 파티마 왕조 몰락 이후 순나파 중에서도 강경 반이스마일파 성향의 [[샤피이파]] 마드하브가 우세를 점하게 되었고, 이는 양국 사이의 문화적 차이로 이어졌다. === 근세 === 양 지역은 모두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다만 이집트는 [[맘루크 왕조]]를 중심으로 반자치가 이루어졌다면, 리비아의 해안지대에는 예니체리들이 통치 실권을 장악하고 점과 선 형태의 통치가 이어졌다. === 근대 === 이집트는 [[메흐메트 알리]] 치하에서 근대화에 성공하는 듯 하다가 이후 수에즈 운하 건설 과정에서의 부채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리비아는 [[세누시야]]라는 수피 교단이 남쪽으로 차드 일대까지 영토를 넓혔으나, 프랑스에 의해 남쪽 영토를 상실한다. 이후 리비아 내 세누시야 교단 세력이 진압되면서 리비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 20세기 === 이 두 나라는 오래전부터 국경 문제로 분쟁이 잦았다. 팔레스타인의 아랍계 독립집단세력들([[PLO]])을 도와줄 때는 뜻을 하나로 모으기도 했었지만, 옆나라다 보니 실질적으로 외교관계는 안 좋았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카다피주의]]는 [[가말 압델 나세르]]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1971년부터 1977년까지는 이집트, 시리아와 함께 연방을 결성했고, '[[아랍 공화국 연방]]'까지 만들 예정도 제안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외교, 그리고 관계 개선까지 하자 리비아는 이집트와 국교 단절까지 하기도 했었다.[* 카다피 집권 이후 리비아의 국기는 처음에는 예멘의 국기처럼 적-백-흑 삼색기였다가 금색 매와 방패의 국장까지 추가해서 이집트랑 거의 비슷했었다. 훗날 이집트랑 국교를 단절할 때 국기를 이집트와 비슷한 모양의 국기가 아닌 전혀 다른 국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녹색이 이슬람 문화권과 아랍 세계에서 신성하게 여기기에 녹색으로만 이루어진 국기를 지정하게 된다.] 그리고 1977년에는 아예 국경에 위치한 이집트 군대에 폭격까지 감행했으나, 이집트군의 반격으로 되려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리비아군은 먼저 기습 폭격을 하고도 전투기 20대 이상, 전차 10여 대를 잃고 100여명의 전사자를 낸 반면에, 폭격을 당한 이집트군은 전투기 6대, 전차 2대를 잃고 20명 남짓한 전사자를 내면서 4차 중동전 초반 이스라엘을 뭉갠 게 운빨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런 참패에 카다피가 분노하여 이 작전 지휘관들을 대거 교체해버렸다.[* 리비아는 [[토요타 전쟁]]에서는 약체인 차드군에게도 패했고, [[미군]]의 [[리비아 공습|엘도라도 협곡 작전]]에 본진을 공격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대 안 되는 톰캣의 격추전과는 대부분 리비아군을 상대로 올린 것이었다. 21세기가 되어도 리비아군은 나아지지 않아서, [[리비아 내전]]에서도 카다피 측과 시민군 측이 나란히 졸전을 벌이며 6개월간 난장판을 벌였다.] === 21세기 === 아랍의 맹주였던 이집트를 배척만 할 수는 없었기에 [[카다피]] 정권 후반기에 리비아는 이집트와 다시 수교를 맺어 전쟁도 멈추고 다시 교류, 정치적 관계 개선도 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이집트를 방문할 당시 병치료 중이던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병문안을 오기도 했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영향으로 이집트에서 [[2011 이집트 혁명|민주화 운동이 성공되자]] 그 이전에 [[튀니지 혁명|혁명]]이 성공된 튀니지, 이집트 혁명 성공 이후 [[바레인 반정부 시위|대규모 시위]]가 있던 바레인의 영향으로 리비아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나타났었다. 초기의 비폭력 시위는 점차 내전으로 비화되었고 이 때 이집트 시민들은 리비아 시민들과 반군을 지지하며 돕기도 했었다. 카다피 정권 몰락 이후 리비아는 이집트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다에시]]를 몰아낼 때도 이집트의 도움을 받았다. 동서로 분열되어 리비아 내전이 다시 발발하자 이집트는 동부를 지원하고 있다. == 교통 교류 == 두 나라 간의 항공, 도로가 이어져 있다. == 관련 문서 == * [[이집트/외교]] * [[리비아/외교]] * [[이집트-리비아-수단 공화국 관계]] * [[리비아-이집트-시리아 관계]] * [[이집트/역사]] * [[리비아/역사]] * [[아랍 제국]] * [[파티마 왕조]] * [[가말 압델 나세르]] * [[안와르 사다트]] * [[무아마르 카다피]] * [[아랍 연합 공화국]] *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 [[아랍 연맹]] * [[아랍의 봄]] * [[2011 이집트 혁명]] *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 [[리비아 내전]]([[제1차 리비아 내전]], [[제2차 리비아 내전]]) * [[아랍 사회주의]] * [[자마히리야]] & [[카다피주의]] * [[나세르주의]] * [[엘 시시]] * [[이집트 문명]] * [[베르베르]] * [[키레나이카]] * [[아랍어]] / [[아랍어 방언]] / [[아랍인]] / [[이집트인]] / [[마그레브 아랍인|리비아인]] * [[이슬람교]] / [[순니파]] * [[대국관계일람/아프리카 국가/북아프리카 국가]]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리비아/외교,version=9)] [[분류:이집트-리비아 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분류:나무위키 아프리카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