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楷固 생몰년도 미상[* 바이두에서는 657~720년으로 나왔다.] [목차] == 개요 == [[거란]]족 출신의 [[무주(당나라)|무주]] 장수. == 생애 == 당나라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이진충]]과 그의 처남 [[손만영]]을 섬기면서 전투에 참여해 696년 8월에 황장곡에서 무주의 군사를 상대해 장현우, 마인절을 사로잡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697년 손만영이 무주와 [[돌궐]]의 연합군에 패해 세력을 잃고 달아나자[* 손만영은 그 이후 가노에게 암살당한다.] 낙무정과 함께 무주에 항복했다.[* 하아소와 마행위, 양봉절은 처형당했다.] 이 때 무주의 대신들이 그를 죽일 것을 상소했지만 [[적인걸]]은 그 재능이 뛰어나 은덕으로 위로한다면 우리를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하면서 사면을 요청했다. 결국 간신히 사면되어 좌옥령위에 임명되었다가 [[측천무후]]의 명으로 [[걸사비우]]를 공격해 그의 목을 베고 천문령에서 [[고왕|대조영]]을 압박했지만 [[천문령 전투|크게 패해]]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 그럼에도 별다른 추궁을 받지 않고[* 이는 걸사비우를 참살한 공이 컸을 것이다. 걸사비우는 허국공의 작위를 받는 등 영향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700년 7월에는 낙무정과 함께 여전히 저항하던 거란족들을 진압하는 한편 거란족 포로를 사로잡아 바쳐[* 무측천이 이 때 거란 잔당들을 평정할 수 있게 된 것은 적인걸의 공이었다고 말하였고, 적인걸은 그 해에 죽었다.] 좌옥검위대장군, 연국공에 임명되고 무(武)씨 성을 하사받았다. 후에 측천무후의 권세가 약해지자마자 [[중종(당)|중종]]의 편을 들었다고 한다. [* 이해고는 무씨 성을 버리고 이씨 성으로 돌아가게 된다.] 노끈으로 된 [[올가미]]를 씌워서 잡거나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과 긴 창을 들고 싸우는 것을 잘해 매번 진을 무너뜨리는 것이 송골매가 까마귀 무리로 들어가는 듯 했다고 하며 향하는 곳마다 쓰러뜨렸다고 한다. [[태평광기]]의 기록에서는 재물을 탐하는 등 탐욕스러운 면모를 보이다가 한직으로 쫓겨나고, 분사하였다고 적혀 있다. 여담으로 안사의 난 진압에 활약한 명장인 [[이광필]]의 아버지인 [[이해락]]이 이해고의 사위라고 한다. 이해고의 딸이 이광필의 어머니로, 즉 이광필은 이해고의 친외손자가 된다.[* 이해고가 이진충의 잔당들을 토벌할 때, 이해락을 항복시켰다고 한다.] == 대중매체에서 == 드라마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 라이벌인 거란 장수로 나온다. 배우 [[정보석]]이 연기했다. [[이해고(대조영)]] 항목으로. [각주] [[분류:몰년 미상]][[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