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人]][[民]][[戰]][[線]] / Popular front}}} == 개요 == > [[쇼와|소화]] 10년^^([[1935년]])^^ [[코민테른]] 제7회 세계대회에서 인민전선운동방침이 채택됐을 때부터 [[유럽|구주 제국]]의 공산운동전선에서는 인민전선운동이 점차 세를 얻고 [[독일]] [[서반아]]에서는 인민전선파가 정권을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기 위해 [[파쇼]]와 대항하여 과감하게 투쟁하고 [[불란서]]에서는 이미 인민전선파가 승리하여 정권을 장악한 상황이며 금후 세계의 공산운동은 인민전선이론을 기조로하여 인민전선의 결성에 의해 [[제국주의]]타도를 향하여 전진해나가는 추세에 있다. >---- > [[리강국|이강국]],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고등법원|高等法院]]檢事局想思部''[*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43 > 그렇다면 인민전선은 과연 무엇인가? 인민전선은 [[노동자]], [[농민]], 그리고 가장 중요하기로는 이른바 '진보적 [[부르주아지]]'를 포괄하는 계급 동맹이다. 달리 말하면, [[파시즘]]에 맞선 노동계급의 단결 요구에 대한 응답이기는 하되, 피착취 계급을 [[부르주아]]의 일부 부문과 단결시키는 방식의 응답이다. 이때 동맹 상대인 부르주아지는 파시즘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진보적인 세력으로 묘사된다. >---- > 알렉스 캘리니코스[* [[https://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5%8C%EB%A0%89%EC%8A%A4%20%EC%BA%98%EB%A6%AC%EB%8B%88%EC%BD%94%EC%8A%A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1313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7420&cid=44546&categoryId=44546| ]]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장][*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그저 국가자본주의로 간주하는, 트로츠키계열의 '''일파'''인 국제사회주의 계열이다. (남한에서는 [[노동자연대]]가 대표적인 조직) 반스탈린주의에 가까운 그이기에 인민전선에 대하여 비판적 어조로 주장하고 있음을 감안할 것.], ''인민전선이 진보운동의 패배를 부르는 이유'', 번역:천경록, (마르크스21, Vol.12, 2011) 인민 전선은 중도~극좌 정당들의 광범위한 연합을 일컫는 말이다. 보통 [[1930년대]] 중후반,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지시하에 [[자유주의]],[[공화주의]],[[급진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등등 범 좌파부터 극좌까지의 정당들이 [[보수주의]],[[파시즘]] 등 우파 내지 극우 정당 연합에 대항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인민전선이 정파 간의 연대를 넘어 독점자본을 제외한 여러 계급 간의 연대로 발전한 것이 디미트로프가 주장한 통일전선이다. 반대쪽은 [[트로츠키]]가 주장한 사회주의 좌파-공산주의 극좌 연대인 공동전선.[* 사실 반자본주의 측면에서는 스탈린보다 트로츠키가 더 극단적이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일단 교묘하게 파시즘을 막기 위함을 명목으로 자유주의자들과도 연대를 한 후 대중운동과 정권참여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PCF:[[프랑스 공산당]], PCE:[[스페인 공산당]]은 모두 [[연립정부]]에서 일단은 장관직을 아예 차지하지 않거나 의미없는 장관직을 차지했다.) 타정파와의 공존 속에서 공산주의의 대중적 헤게모니를 잡아 연성혁명을 통해 정권을 차지했지만([[동유럽]]의 경우),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대놓고 타세력과의 연대단절, 즉각적 혁명과 봉기만 부르짖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국, 특히 유럽에서는 [[파시즘]]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파시즘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 뿐 아니라 [[스페인 제2공화국|스페인]], [[라트비아 제1공화국|라트비아]], [[루마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등지까지 세력을 확산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코민테른]]은 [[1935년]] 6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7차 세계 공산당대회에서 반파쇼 투쟁을 당면 목표로 혁신주의 정치세력들[* 사민주의자, 독자적인 사회주의자 및 자유주의자 등]과의 연계를 결정했다. 이는 곧 기존에 견지했던 노선인 [[계급투쟁]]과 혁명정책을 (일시적으로나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간기]] [[유럽]]에서의 인민전선, 특히 집권까지 성공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인민전선이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동유럽의 나치 점령지에서도 각국의 노동자당을 중심으로 반나치 인민전선이 꾸려진 바 있다. 이러한 인민전선을 바탕으로 전후에 동유럽에서 좌익이 정권을 잡게 된다. [[소련]] 말기에도 [[인민전선(동음이의어)|인민전선]]이라는 단체가 각 공화국별로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반 공산당 성향의 정파들이 해당 공화국에서 하나의 정치체를 구성한 경우로, [[1990년]] 소련 지방선거에서는 [[발트 3국]]과 [[몰도바 SSR]] 최고 소비에트 의회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소련 해체]]의 첫발을 내딛었다. 다만 공화국별로 사정이 달라서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 배경 == 인민전선론이 출현한 배경에는 [[유럽]]의 정세변화, 특히 [[독일]] 국내 정세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 [[독일 공산당]]은 다른 좌파 정치세력, 특히 '''사회민주주의자'''에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코민테른]]과 [[독일 공산당]]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소위 '사회파시즘'론을 통해 [[사민주의]] 정당을 [[나치당]]이나 [[파시스트당]]과 동급으로 취급하여 투쟁의 대상으로 보았다. 이는 [[아돌프 히틀러]]의 정치력과 잠재력을 과소평가한데다가 혁명이론에 맞추어서 [[독일 사회민주당]]과 빈민층으로 전락한 계층의 지지를 흡수하면 자연스레 혁명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는 안이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기도하다. 하지만 빈민층으로 전락한 계층의 지지는 상당수가 공산당이 아닌 [[나치당]]으로 향했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공산당은 단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듯한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독일 공산당]]은 [[히틀러]]와 [[나치]]에 맞서 [[독일 사민당]]과 협력하기를 거부하며 싸워댔고 그 결과 히틀러의 집권을 허용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던 것. 그제서야 부랴부랴 공산당측에서 사민당과 연합하며 수습하려나섰지만 이미 뒤늦은 일이었다.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독일 공산당]]은 불법단체로 지정되어 탄압받았고,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대외적으로도 [[히틀러]] 집권 이후 [[나치 독일]]은 본격적인 재무장에 착수했고 나치는 반공이념을 내세우는 한편 노골적으로 중부 및 동부 유럽으로의 [[레벤스라움|침략의도]]를 내비치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의 집권은 [[소련]]에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다가왔다. [[스탈린]]은 [[서유럽]]의 민주국가들인 [[영국]], [[프랑스]]와 제휴하여 [[나치 독일]]을 견제하려 했고 인민전선론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볼 수 있다. == 각국의 인민전선 == 여러 나라에서 인민전선이 형성되었으나, 프랑스와 스페인의 인민전선이 가장 유명하다. === 프랑스 === [include(틀:프랑스 좌파 관련 문서)] Front Populaire > "노동과 자유 그리고 평화의 인민전선이라는 구상을 선전하고 급진주의자, 공화주의자 그리고 민주주의자들과 함께 공동행동을 펼칠 계획을 말하게 되어 기쁩니다. ...(중략)... 공산주의자들이 원하는 강하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프랑스를 만들기 위해 투표하십시오." >---- > 모리스 토레즈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1936년 4월 17일 1936년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사회주의 정당인 [[SFIO]]([[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현 [[사회당(프랑스)|사회당]]의 전신]와 좌파 자유주의[* 당시에는 사회자유주의라는 용어 대신 [[급진주의]]라는 말이 쓰였다.] 정당인 [[급진당(프랑스)|급진당]](Parti Radical)[* 정식 명칭은 공화주의 급진주의 급진사회주의당 PRRRS. 3공화정 후반의 지배적인 정당이었다.], [[프랑스 공산당]](PCF)이 연합하여 수립되었다. 그해 열린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에 성공했으며, SFIO의 당수인 [[레옹 블룸]]을 총리로 하는 연립 내각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 급진당과 공산당의 다툼으로 1938년 인민전선은 사실상 붕괴했다.[* 특히 스페인 내전 개입에서 급진당이 반대한 것이 치명타였다.] 내흥을 겪는 와중에 나머지 좌파들은 우파에게 정권이 넘어가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달라디에 총리와 급진당[* 자유민주주의 정당이었으나 프랑스의 주요 부르주아 정당이기도 했고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제국 확장에도 관여한 바 있다.]의 정권 독점을 용납했다. 결정적으로 소련이 히틀러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다른 진보-좌파 세력의 통수를 후려갈겼다. 프랑스 공산당 역시 조약체결 이후 반독 반파쇼 투쟁에 모호한 입장을 내비치다가 매국노 집단으로 몰려 인민전선에서 손절 당하고 정당지위도 박탈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리고 1940년 [[나치 독일]]에게 [[파리(프랑스)|파리]]가 함락되고 [[비시 프랑스]]가 들어서며 프랑스의 인민전선은 제3공화국과 함께 짧은 역사를 끝마치고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민전선의 성립과 경험은 인민전선의 붕괴 이후로도 프랑스 국내 정치지형에서 좌파-사회주의적 공화주의와 우파-자유주의적 공화주의를 나누는 기본틀로 작용했다. 직접적으로는 나치 독일의 점령기 중에 비시 정부 수립과 레지스탕스 간의 새로운 분열구도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더 나아가 인민전선은 대전 이후에도 프랑스의 새로운 정치지형뿐만 아니라 냉전시기 프랑스의 사회운동 및 노동자 문화의 이념적 기준으로 제시되었고 그 방향을 결정할 만큼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 스페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인민전선(스페인))] == 관련 문서 및 외부 링크 == * [[반파시즘]] * [[코민테른]] * [[프랑스 좌파]] / [[프랑스의 자유주의와 급진주의]] * [[프랑스 공산당]] *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 [[급진당(프랑스)]] * [[스페인 제2공화국]] * [[스페인 공산당]] * [[스페인 사회노동당]] * [[공화좌파당]] * [[마르크스주의 통합노동자당]] * [[전국 노동 연맹]] * [[스페인 내전]] * [[https://en.wikipedia.org/wiki/Popular_front|영문 위키백과 Popular front 문서]] * [[인민전선(동음이의어)]] == 기타 == * [[파리 지하철 12호선]]에는 인민 전선(Front Populaire) 역이 있다. 2022년 현재 북쪽 종점이라 역 이름만 가지고는 어디로 가는 열차인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 역이 위치한 도시인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를 앞에 병기해주는 것이 일반적. 이 역 이후로 오베르빌리에 시청까지 12호선을 연장하는 공사가 2012년에 착공하였다. ~~2km 남짓한 거리인데 10년 넘게 공사중이다~~[* 중간에 [[생드니]] [[운하]]가 있어 시일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 스페인 내전이 바탕인 보드게임이 있다. [[파일:pic688598.jpg]] 상자 [[파일:popular front.jpg]] 내용물 [[분류:전간기]][[분류:반파시즘 정당]][[분류:스페인의 역사]][[분류:프랑스 제3공화국]][[분류:정당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