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송 황후)] ||<-2> '''{{{#ece5b6 북송의 황후[br]{{{+1 仁懷皇后 | 인회황후}}}}}}'''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peratriceSongQinzong.jpg|width=100%]]}}}|| || '''[[시호|{{{#ece5b6 시호}}}]]''' ||<(> 인회황후(仁懷皇后) || || '''[[성씨|{{{#ece5b6 성}}}]]''' ||<(> 주(朱) || || '''{{{#ece5b6 출생}}}''' ||<(> 1102년, 개봉부 상부현 || || '''{{{#ece5b6 사망}}}''' ||<(> 1127년/1128년 || || '''{{{#ece5b6 재위}}}''' ||<(> 1126년 ~ 1127년 || || '''{{{#ece5b6 배우자}}}''' ||<(> [[흠종]](欽宗) || || '''{{{#ece5b6 아버지}}}''' ||<(> 주백재(朱伯材) || [목차] [clearfix] == 개요 == 仁懷皇后 朱氏 (1102년 ~ 1127년/1128년) 송나라의 황제였던 [[흠종]]의 황후로, 송나라를 북송과 남송으로 구분할 때 개봉을 수도로 했던 [[북송]]의 마지막 황후이다. == 상세 == 주황후는 개봉부 상부 출신이었으며, 무강군 절도사를 지낸 주백재의 딸로 태어났다. 휘종 정화 6년(1116년)에 황태자였던 조환이 황태자비로 들였다. 주씨가 황태자비로 있을 당시, 1125년에 북송과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킨 이후, 북송은 금나라와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금나라는 북송에 대한 침략을 감행한다. 사태의 제1 원인 제공자였던 [[휘종(송)|휘종]]은 잽싸게 장남인 조환에게 덜컥 양위하고 조환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주씨도 황후가 되었다. 원인 제공자인 휘종의 책임회피에 흠종이 금나라와의 강화조약을 파토내면서, 송나라에게 제대로 열받은 금나라가 결국 개봉을 함락시켜 흠종과 휘종을 포로로 붙잡았다. [[정강의 변]] 항목 참조. 황후였던 주씨도 이때 금나라로 끌려가면서 모욕을 받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한편, 임안으로 천도했던 송나라 조정에서는 주황후의 생사여부가 오랫동안 전해지지 않았으며, [[영종(송, 13대)|영종]] 경원 3년(1197년)에 와서야 비로소 인회(仁懷)의 시호를 받을 수 있었다. 흠종과 인회황후 사이에서 태자 [[조심(송)|조심]]과 딸 유가공주도 있었는데 [[정강의 변]] 때 황후와 함께 금나라로 끌려갔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송사)] [[분류:송나라의 황후]][[분류:1102년 출생]][[분류:중국의 자살한 인물]][[분류:카이펑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