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독일 연방 구성국]][[분류:독일 제국 구성 제후국]][[분류:공국(공작)]][[분류:1918년 멸망]] [include(틀:독일 제국 구성 제후국)] ||<-3><#fff> {{{#078930 {{{+1 '''작센알텐부르크 공국'''}}}[br]'''Herzogtum Sachsen-Altenburg'''}}} || ||<-2> [[파일:작센알텐부르크 공국 국기.svg|width=100%]] || [[파일:작센알텐부르크 공국 국장.png|width=50%]] || ||<-2><#078930> {{{#fff '''국기'''}}} ||<#078930> {{{#fff '''국장'''}}} || ||<-3><#fff> {{{#078930 '''위치'''}}} || ||<-3><#ff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erman_Empire_-_Saxe_Altenburg_%281871%29.svg.png|width=250]] || ||<-3><#078930> [[1826년|{{{#fff '''1826년'''}}}]] {{{#fff '''~'''}}} [[1918년|{{{#fff '''1918년'''}}}]] || ||<-3><#fff> {{{#078930 '''역사'''}}} || ||<#078930><-2> {{{#fff '''성립 이전'''}}} ||<#078930> {{{#fff '''멸망 이후'''}}} || ||<-2><#fff> [[작센바이마르 공국|{{{#078930 '''작센바이마르 공국'''}}}]] ||<#000000> [[바이마르 공화국|'''{{{#fff 바이마르 공화국}}}''']] || ||<-3><#fff> {{{#078930 '''지리'''}}} || ||<#078930> {{{#fff 위치}}} ||<-2>독일 [[튀링겐]] || ||<#078930> {{{#fff '''수도'''}}} ||<-2>[[알텐부르크]] || ||<-3><#fff> {{{#078930 '''인문환경'''}}} || ||<#078930> {{{#fff '''언어'''}}} ||<-2>[[독일어]] || ||<#078930> {{{#fff '''종교'''}}} ||<-2>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078930> {{{#fff '''민족'''}}} ||<-2>[[독일인]] || ||<-3><#fff> {{{#078930 '''정치'''}}} || ||<#078930> {{{#fff '''정치체제'''}}} ||<-2>[[입헌군주제]] || ||<#078930> {{{#fff '''국가원수'''}}} ||<-2>[[공작(작위)|공작]]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국이었으며 수도는 [[알텐부르크]][* 1810년경 고안된 스카트(skat, 3명이서 하는 카드놀이)의 발상지이다.]였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1,323 km², 인구 20만 7천 가량이었다. == 역사 == [[파일:Schloss_Altenburg_02.jpg]] 공가가 거처했던 알텐부르크 성 오늘날 [[튀링겐]] 지역에 위치한다. 전기(前期)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이 17세기에 있기도 했으나, 곧 다시 해체되었고,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국이 다스렸다. 그러나 1826년 베틴 가문 에른스트 계통의 영지가 재편되면서 다시 탄생했는데 정작 군주인 프리드리히 공은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국의 군주였다.[*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가가 단절되어 그 영지를 분할할 때,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가가 알텐부르크를 얻고 기존 영지인 힐트부르크하우젠을 [[작센마이닝겐 공국]]에 넘기면서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이 성립되었다.] 이후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작센알텐부르크 자유주가 되었다가 1920년에 [[튀링겐]]으로 편입되었다. == 왕사(王史) == [include(틀:역대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 프리드리히 (1826~1834) - 재편 이전에는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 공국의 군주였다.[* [[바이에른 왕국|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바이에른)|루트비히 1세]]의 장인이다. 4녀 테레제가 루트비히 1세의 왕비다. 또한 5녀 루이제는 [[룩셈부르크]] 대공 [[아돌프(룩셈부르크)|아돌프]]의 어머니이다.] * 요제프 (1834-1848) - 딸만 다섯을 두어 1848년 혁명으로 퇴위했을 때 후계는 동생이 이었다.[* 장녀 마리는 [[하노버 왕국]]의 마지막 국왕 [[게오르크 5세]]의 왕비, 4녀 엘리자베트는 [[올덴부르크 대공국]] 페터 2세의 대공비, 5녀 알렉산드라는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부인이자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로마노바|그리스의 올가 왕비]]의 어머니이다.] * 게오르크 (1848-1853) * 에른스트 1세 (1853-1908) - 55년간 즉위했으나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가 죽어서, 후계는 조카가 이었다. * [[에른스트 2세(작센알텐부르크)]] (1908-1918) 에른스트 2세는 1918년 퇴위한 독일 제후들 가운데 최후까지 생존한 군주였으며(1955년 사망), 고향을 떠나기를 싫어하여 유일하게 [[동독]] 치하에서 살았다. 그가 살던 성은 소련군이 들어와 몰수했지만 거주는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두 아들[* 아버지와 달리 이들은 서독에서 살았다. 이산가족]들이 모두 미혼으로 사망하여 1991년에 가계 단절.[* 남계가 아닌 여계로는 [[빌헬름 2세]]의 동생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하인리히 왕자]]의 차남 지기스문트와 결혼한 에른스트 2세의 장녀 샤를로테의 후손이 아직 남아있고, 더 윗대에서 갈라져나온 여계후손도 여럿 있다.] 이후 이 가문에 대한 권리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가 보유한다고 한다.[* 허나 이 가문도 곧 남계가 단절되고 단절 후 명목상의 공위는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로 넘어갈 전망이기 때문에,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마저 단절된 후에는 작센알텐부르크 가문에 대한 권리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로 함께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