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초 군주)] |||||| '''{{{#ece5b6 초(楚)나라 3대 왕[br]{{{+1 장오}}}[br] 莊敖}}}''' || |||| '''[[성씨|{{{#ece5b6 성}}}]]''' ||미(羋) || |||| '''[[본관|{{{#ece5b6 씨}}}]]''' ||웅(熊) || |||| '''[[휘|{{{#ece5b6 휘}}}]]''' ||간(囏) || |||| '''{{{#ece5b6 아버지}}}''' ||[[초문왕]](楚文王) 웅자(熊眥) || |||| '''{{{#ece5b6 어머니}}}''' ||[[식규]](息嬀)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72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기원전 674년 ~ 기원전 672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19대 [[군주]], 3대 왕. 달리 도오(杜敖)[* 《[[사기(역사책)|사기]]》에서 그렇게 전한다. 《[[강희자전]]》은 [[집운]]을 따와서 이때 [[반절]]이 동오절(董五切)이고 소리가 도(睹)와 같다고 서술했다. ], 도오(堵敖)라고도 한다.[* 《[[초사]]》에서는 그렇게 전한다.] 처음 휘는 웅간(熊艱). 《[[사기(역사책)|사기]]》 <초세가>의 주석에 의하면 囏(어려울 간)자와 艱(어려울 간)자는 같은 음으로 읽는다고 되어 있다. == 치세 == 초 문왕이 죽고 웅간이 초나라 왕이 되었는데, 나라는 여전히 강하고 부유했다. 그러나 장오는 사치하고 사냥질만 일삼았기 때문에, 민심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중원을 노리고 있었다.[* 단 당시에는 사냥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게, 군사 훈련의 기능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을 사냥하여 무기 사용 숙련도를 높이는 동시에, 추적과 몰이 등을 통해 지휘체계나 부대 단위의 움직임을 숙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오 3년(기원전 672년), 결국 아우인 웅군이 그를 살해하고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초성왕]]이다. [각주] [[분류:초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67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