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기)] [include(틀:한서)] [목차] 張蒼 (? ~ 기원전 152년) == 개요 == [[초한쟁패기]] ~ [[전한]]의 인물. == 생애 == 본래는 진나라에서 문서를 담당하는 관리, 어사였다가 죄를 짓고 도주했다. 이후 [[한고제|유방]]의 군대에 합류하였는데, 유방이 남양을 공격하러 갈때 객으로 종군했다가 무슨 죄를 지어 허리를 베는 형벌인 [[요참형]]에 쳐해질 위기에 처했는데, [[왕릉(전한)|왕릉]]이 구명해주어 목숨을 건진다. 그 이유라는게 '피부가 살지고 뽀얗기가 박속과 같았다.'라는 매우 예뻐서라는(...)게 약간 황당하지만. 요참형은 원래 공개집행에 수형자의 옷을 모두 벗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셴양시|함양]] 공격에도 참여하고 [[정형 전투]]에 참가해 무공을 세우는 등, 유방군의 2군으로서 활약하고, 초한쟁패기가 끝난 뒤에는 진나라 시절 익힌 관료능력과 초한쟁패기 기간동안 군 경험을 살려 변경의 수비나 중앙의 행정에서 능력을 발휘. 상국 소하는 장창을 상국부에 상구시켜 회계 보고를 주관하게 하였고 여후가 사망하자 한문제 유항을 황제로 옹립한다. [[승상]]의 자리까지 올라 자신을 살려준 왕릉보다도 더 출세했지만 장창은 언제나 왕릉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휴일에는 언제나 왕릉의 집에 문안을 올렸다고 한다. 이후 승상 관영이 사망한 뒤를 이어 [[한문제]]때는 승상에 올라 여러 물건이나 음악, 음률의 표준 규격을 정하거나 역법을 정리했다. 장창은 이후 [[춘추좌씨전]]을 구하여 전수하였으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산술서인 구장산술의 기초를 닦기도 하였다. 말년에 은퇴하고 나서는 이가 다 빠져 음식을 씹을 수 없게 되자 젊고 임신한 여자만 수백명을 첩으로 들여서 모유를 빨아먹다가 애 낳으면 내보내버리는 행적으로 역사에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장창, version=96, paragraph=5)] [[분류:초한쟁패기/인물]][[분류:한나라/인물]][[분류:기원전 15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