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신라 왕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 #fbe673" {{{#fbe673 '''정목왕후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신라의 왕녀/태종 무열왕 ~ 경순왕)]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 #fbe673" '''{{{#fbe673 신라 흥덕왕의 왕비[br]{{{+1 정목왕후 | 定穆王后}}}}}}'''}}}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21970, #7C2A8D 20%, #7C2A8D 80%, #621970)" '''신라 소성왕의 왕녀'''}}}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mperor_Hundeok.jpg|width=100%]]}}} || ||<-2> {{{#fbe673 {{{-2 흥덕왕릉 전경}}} }}} || || '''출생''' ||미상 || || '''사망''' ||[[826년]] [[12월]] || || '''능묘''' ||'''[[흥덕왕릉]](興德王陵)''' || ||<|2> '''재임기간'''[br]'''(음력)''' ||'''{{{#fbe673 신라 왕비}}}''' || ||? ~ [[826년]] [[12월]]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경주 김씨]] || || '''부왕''' ||[[소성왕]] || || '''모후''' ||계화부인(桂花夫人) || || '''형제자매''' ||형제 - [[애장왕]], 김체명(金體明) || || '''부군''' ||[[흥덕왕]] || || '''호''' ||'''장화부인(章和夫人)''' || || '''이칭''' ||창화부인(昌花夫人) || || '''시호''' ||'''정목왕후(定穆王后)''' ||}}}}}}}}} || [목차] [clearfix] == 개요 == [[신라]] 제 39대 국왕 [[소성왕]]의 딸이자 [[신라]] 제 42대 국왕 [[흥덕왕]]의 왕비. 또한 신라 제 40대 국왕 [[애장왕]]의 누이. == 생애 == [[숙부]] [[흥덕왕|김경휘]][* 장화부인의 아버지 [[소성왕]]의 남동생이다.]와 결혼한다. 이후 그녀의 형제 [[애장왕]]이 [[숙부]] [[헌덕왕|김언승]][* 아버지 [[소성왕]]의 동생]에 의해 쿠데타로 시해당한다.[* 특기할 점은 숙부 [[헌덕왕]]이 그녀의 형제인 [[애장왕]]을 시해하고 왕이 될 때 [[흥덕왕|남편]] 또한 가담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826년]]에 [[흥덕왕|남편]]이 왕위에 오르고 본인 또한 왕후가 된다. [[826년]] [[12월]]에 졸(卒)하였고 이후 ‘정목왕후(定穆王后)’로 추존된다. == 여담 == 남편 [[흥덕왕]]은 [[애처가|아내를 무척 사랑하였는지]] 재혼하지 않고 그녀만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또한 장화부인은 신라 역사상 유일하게 왕과 합장된 왕후이기도 하다. >제42대 흥덕대왕(興德大王)이 보력(寶曆) 2년 병오년(826)에 즉위하고, 얼마 안 되어 어떤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앵무새]] 한 쌍을 가지고 왔는데, 오래지 않아 암컷이 죽었다. 홀로 남은 수컷이 애처롭게 울기를 그치지 않자, 왕은 사람을 시켜 앞에 [[거울]]을 걸게 하였다. 새가 거울 속의 [[그림자]]를 보고 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거울을 쪼다가 그림자임을 알고서 슬피 울다가 죽었다. >---- >[[삼국유사]] 앵무조 >겨울 12월에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이 죽으니, [[추봉]]하여 정목왕후(定穆王后)라 하였다. 왕이 왕비를 생각하며 잊지 못하고, 슬퍼하며 즐거워하는 일이 없자, 군신들이 표를 올려 다시 왕비를 맞아들일 것을 청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외짝 새도 짝을 잃은 슬픔이 있거늘, 하물며 좋은 배필을 잃고서는 어떠하겠는가. 어찌 차마 무정하게 곧바로 다시 아내를 얻겠는가.”라고 하며 따르지 않았다. 또 시녀를 가까이 하지 않고, 좌우의 시자(使者)로는 오직 [[환관]]만을 두었다. >---- >삼국사기 흥덕왕 본기 [[분류:신라의 왕비]][[분류:신라의 공주]][[분류:82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