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북한의 외교]] [목차] == 개요 == [[1990년대]] 들어 [[북한]] [[김정일]]이 자국의 [[외교관]]들에게 지시했던 새로운 외교전략. == 상세 == [[중국]]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 [[저팔계]]의 성격을 보면 욕심이 많고 게으름과 미련함이 많기 때문에 그 성격에서 본딴 게 아닌가 싶을 수 있다. 사실 누군가가 자신과의 대화에서 불리하게 돌아가면 미련한 척, 어리석은 척 하면서 상대를 불리하게 하는 전략일 수도 있다. [[화전양면전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의 이름을 본딴 외교 방식으로,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미국]]·[[일본]]과의 외교에 주력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북한의 국가전략과 간부정책의 변화에 관한 연구’에서 “김 위원장은 ‘범의 굴에 들어가 범을 잡는다는 심정으로 미국 일본 등과의 외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1991년쯤 강석주 외무성 부상을 통해 “[[냉전]]이 종식되고 블록 대결도 없어졌는데, 블록 불가담(비동맹) 운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며 이같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7/16/2006071670471.html|기사]] 당시 외교관들에게 “우리는 이제부터 외교를 [[저팔계]]식으로 해야 한다. 저팔계처럼 자기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적에게도 추파를 던질 줄 아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외교방식”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고 하며 “그렇다고 적들에게 바지까지 벗어주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마라”며 “[[외교관]]들은 당성과 계급적 원칙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고 겉으로 철저히 [[영국]] [[신사]]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에 있었다.''' 김정일은 1994년 초 클린턴 행정부와의 협상에 임하는 강석주 일행에게 ‘저팔계 외교’라는 협상 방침을 줬는데 이때 김정일은 “[[중국]]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가 솔직한 척, 어리석은 척, 억울한 척, 미련한 척 하면서 어딜 가나 얻어먹을 것은 다 얻어 먹은 것처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저팔계식 외교를 해서 [[미국]] 놈들로부터 핵도 지키고 받아낼 것도 다 받아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려 클린턴 행정부를 속여 넘겼다는 것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253981|기사]] '''그 결과 NPT 혜택을 이용해먹고 쌩깐 것이며 대놓고 핵개발한 [[이란]]보다도 나쁜 선례다.''' 2008년 [[평안북도]] [[녕변원자력연구소|녕변 냉각탑]]을 이용해 [[미국]]을 교란시켜 마치 핵실험 포기를 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줄 것을 요구해 성공했다. 전략적 인내를 활용한 [[버락 오바마]]까지나 먹혔음 먹혔지, [[도널드 트럼프]] 이후에는 꿈도 못 꾼다.[* [[미국]]은 전세계 군사력 1위뿐만 아니라 [[모사드]] 이상 버금갈 정도로 정보전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실제로 [[하노이 회담]]의 막판 결렬이 이를 잘 보여준 사례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들 이익을 위해 주변국 관계를 감수[* [[북중관계]], [[북러관계]]]하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강대국들을 이용해 [[소모품]] 취급한다. [[태영호]] 공사의 말에 의하면 [[중국]]은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지만 [[미군]]과의 직접적인 대치를 피하기 위해 북한을 지원해 줄 수밖에 없고 북한은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중국을 자기 입장에 유리하게 끌고 다닌다는 것이다. == 여담 == [[이제 만나러 갑니다(프로그램)|이만갑]]에서 [[평양]] 출신 [[기자]]인 김길선[* 기자 출신. [[김일성대학]] 졸업. 1998년 가족들과 함께 [[탈북]]했다.]도 이를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