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貞觀政要}}} [목차] == 개요 == [[당나라]]의 [[리즈 시절|전성기]]를 이끌었던 [[태종(당)|당태종]](626-649 재위)이 [[정관지치|23년에 걸친 치세]] 동안 [[위징]] 등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정관(연호)|정관]](貞觀)' 자체가 [[태종(당)|당태종]] 시기의 [[연호]]다.[* '정요(政要)'는 '정(政)치의 요(要)체'를 의미한다.] 8세기 초에 오긍(670-749)이라는 역사가가 정리, 편찬했다.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제왕학]] 서적이지만, [[당나라]] 초기의 사회 제도와 문화를 이해하는 사료도 된다. == 상세 == 오긍이 8세기 초에 정관정요를 썼음은 분명하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논란이 있다. 현재의 통설은 오긍이 709년 [[중종(당)|당중종]]에게 한 번 정관정요를 바쳤고, 729년 [[당현종]]에게 약간 다르게 다듬은 판본을 다시 한 번 바쳤다는 것이다. 당송 시대에 이미 서로 다른 판본들이 돌아다녔다. 현재 유통되는 것은 대체로 15세기 [[명나라]] 때 정리한 판본에 근거하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관정요 판본이 1370년(홍무 3)에 나온 것일 정도라 어쩔 수가 없다. 등장인물들이 [[먼치킨(클리셰)|먼치킨]]들인 데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주로 다루므로 [[동아시아]] [[제왕학]]의 [[바이블]]이자 [[끝판왕]]이라고 불린다. 덕분에 동양 세계에서는 국왕과 신하들의 필독서였고 그만큼 애독한 사람들도 많다. 간단히 예를 들어 보자면... * [[당나라]] [[현종(당)|현종]], [[문종(당)|문종]]이 애독했다. 특히 [[현종(당)|당현종]]은 치세 전반에 '''개원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룩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안록산의 난]]이 일어날 정도로 말아먹긴 했지만... * [[당나라]] [[선종(당)|선종]]은 아예 주요 문구를 발췌해서 [[병풍]]을 만들었다. * [[금나라]] [[세종(금)|세종]]은 이 책을 인쇄까지 했다. [[인쇄술]]이 아직 최신기술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 [[청나라]] [[건륭제]]도 이 책을 매우 좋아했다. 이 사람도 [[태종(당)|당태종]] 뺨치는 사람. * [[고려]] [[광종(고려)|광종]]도 애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https://db.history.go.kr/KOREA/item/compareViewer.do?levelId=kr_002_0290_0010_0010|#]] * [[조선]] [[세종(조선)|세종]]은 대군 시절 이 책을 읽으려다가 [[태종(조선)|태종]]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고 어느 책이든 닥치는 대로 읽지만 왕통을 계승할 수 없는 충녕대군에게 태종은 안쓰러움을 느꼈다. 태종은 왕실의 후계를 자신처럼 유혈사태를 겪을 일 없이 적장자인 [[양녕대군]]에게 곱게 물려주고자 책벌레 충녕을 최대한 정치와 먼 분야에 관심하도록 유도했는데, 대표적 일환이 바로 정관정요를 압수하고 금지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정관정요가 제왕학의 [[교과서]]이다 보니 가장 대표적인 정치서적인 정관정요만큼은 못 읽게 했던 것. 하지만 결국 큰형이 폐세자되어 새 [[세자]]로 책봉되고 왕이 되면서는 세종 역시 정관정요를 읽고 교육을 받았다.] * [[에도 막부]] [[도쿠가와 이에야스]], [[메이지 덴노]]를 비롯한 [[에도시대]] [[쇼군]], [[천황|덴노]]들도 정관정요를 열심히 읽었다. *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 등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자들도 애독했다고 한다. 특히 [[마오쩌둥 어록]]은 사실상 공산당판 정관정요라 봐도 될 정도. 사실 제대로 된 [[동아시아]] 국가의 [[군주]]치고 읽어 보지 않은 이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 비판 == [[국가주의]]적 요소가 제법 들어있고 [[유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에 유학자들 가운데에서는 [[대학연의]]가 차라리 낫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정관정요에선 신하말에 귀 기울이는 성군 당태종의 모습만 쭉 나오는데 청나라의 역사학자인 조익은 대놓고 "태종이 신하들 간언 들은건 즉위 최초 때밖에 없다" 라고 비판했다. 즉 정관정요는 실제 태종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당나라 시기에 당황실이 내세운 [[프로파간다]]물''' 성향이 강하다는 걸 전근대 학자들도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바람직한 책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 외부 링크 == * [[http://db.cyberseodang.or.kr/front/main/main.do|동양고전종합DB]] [각주] [[분류:수당시대]][[분류:중국의 역사책]][[분류:태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