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송나라/인물]][[분류:한단시 출신 인물]] [include(틀:송사)] [목차] == 개요 == 丁德裕 [[북송]]의 장수로 명주(洺州) 임명현(臨洺縣) 출신이다. == 생애 == 아버지 정심기(丁審琦)는 창무군(彰武軍) 절도사를 지냈다. 정덕유는 [[후주]] 광순(廣順) 연간 초에 음서를 통해 공봉관(供奉官)이 보임되었다. 960년 북송이 들어선 뒤 통사사인(通事舍人), 서상합문부사(西上閤門副使)를 역임하였으며, 962년 동상합문사(東上閤門使)로 전임되었다. 정덕유는 모용연쇠를 따라 [[남평]]을 평정하고 공적을 세워 인진사(引進使)로 제수되었다. 또한 [[반미(북송)|반미]], [[윤숭가]]와 함께 침주(郴州)에서 승리하고 객성사(客省使)로 옮겼다. 967년, 내객성사(內客省使)로 승진하였다. 이때 [[후촉]]이 처음 평정된 뒤 도적들이 봉기했는데, 정덕유는 서천도순검사(西川都巡檢使)로 임명되었고 합문부사 [[장연통]]과 함께 군대를 이끌어 도적들을 평정하고 도적의 수괴 강조(康祚)를 사로잡아 책형을 내렸으며, 다른 잔당들도 모두 평정하였다. 그러나 정덕유는 장연통과 불화하여 조정으로 돌아와서 장연통의 음모를 고발하였고 장연통은 죄를 받아 기시형에 처해졌다. 한편 전운사(轉運使)·예부낭중(禮部郞中) 이현(李鉉)이 술에 취한 일이 있었다. [[태조(송)|태조]]는 여기에 분노하여 역마로 이현을 소환하고 어사대에 이를 심사하게 했다. 이현은 정덕유가 촉에 있을 때 날마다 청탁이 있어도 거부했다고 말했다. 어사대에서 이를 알리니 태조는 이현이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여 이현을 좌찬선대부(左贊善大夫)로 좌천시켰다. 정덕유는 다시 지노주(知潞州)로 전출되었다. 975년 [[남당]]을 정벌할 때 태조는 정덕유를 상주행영병마도감(常州行營兵馬都監)으로 삼고 [[오월(오대십국시대)|오월]]의 군대를 거느려 송군의 정벌를 돕게 했다. 정덕유는 상주가 평정된 뒤 상주의 사무를 대행하였으며, 다시 승주동남로행영도감(昇州東南路行營都監)으로 전임되고 윤주(潤州)의 남당군 5천여 명 물리쳤다. 윤주가 함락된 뒤 상윤등주경략순검사(常潤等州經略巡檢使)를 겸임하였다. 정덕유는 괴팍하고 험악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으며, 자신의 세력을 믿고 악랄하게 행동하며 사졸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횡령을 저지르고 뇌물을 받으며 만족할 줄 몰랐다. 오월의 [[전홍숙]]이 이 사실을 조정에 고발하여 정덕유는 결국 976년 방주자사(房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이후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