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독립장]] || 성명 ||정봉준(鄭鳳俊) || || 이명 ||정봉준(鄭奉俊) || || 생몰 ||? ~ ? || || [[출생지]] ||미상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정봉준은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군이 강제해산당하자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1907년 8월 초 충주 노은면에서 일본군과 교전했고, 8월 15일에는 괴산군 칠성암과 지평 삼산동에서 일본군 300여 명과 맞붙어 사흘간 교전했다. 또한 충주군 목계에서 일본군 10여명과 교전하여 2명을 사살하고 말 5필 및 병기를 노획했다. 또한 1907년 9월 충주 과현에서 40~50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교전했다. 이후 그는 황해도 토산군 황곡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의병대가 흩어지자 패잔병을 수습하여 원주로 이동했다. 그는 원주에서 [[정낙인]] 의병장의 부대와 합세하여 500명의 군사를 모았고, 1907년 음력 11월 경기도 양주에서 [[13도 창의군]]이 형성되자 100여 명의 읩여을 거느리고 참여하여 관북창의대장을 맡아 서울진공작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13도 창의군이 실패한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정봉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