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정 군주)] ||<-3> '''{{{#ece5b6 정(鄭)나라 13대 국군[br]{{{+1 양공}}}[br] 襄公}}}''' || ||<-2> '''[[성씨|{{{#ece5b6 성}}}]]''' || 희(姬) || ||<-2> '''[[본관|{{{#ece5b6 씨}}}]]''' || 정(鄭) || ||<-2> '''[[휘|{{{#ece5b6 휘}}}]]''' || 견(堅) || ||<-2> '''{{{#ece5b6 아버지}}}''' || [[정목공]](鄭穆公) 희란(姬蘭)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587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04년 ~ 기원전 587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정(鄭)나라]]의 제13대 [[군주]]. [[정목공]]의 아들. [[정영공]]의 아우.[* 일설에는 형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진(춘추오패)|진(晉)나라]]와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강대한 초나라를 따랐다.[* 공원국 교수의 저서인 춘추전국이야기 4권에 나오는 말을 빌면, 아침에는 진(晉)나라와 협상하고, 밤에는 초(楚)나라와 협상한다는 말이 당시 정나라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 생애 == 형인[* 본문에서는 흔히 알려진대로 정 영공의 동생이라는 설에 따른다.][* 정 영공의 형이라는 설에 따르면 정 양공이 서장자라고 한다.] 정 영공이 어이없게 시해되자 그가 뒤를 이었다.[* 시해된 사유는 [[정영공]] 문서를 참조할 것.] 정 양공 원년(기원전 604년), [[송(춘추전국시대)|송(宋)나라]]의 화원은 정나라에서 포로로 잡고 풀어 준 일이 있었는데, [[초장왕]]은 그것에 진노하여 정나라를 치자 진(晉)나라를 따랐다. 그러자 진나라는 순림보를 보내 구원하였다. 정 양공 5년(기원전 600년), 초나라가 다시 정나라를 치니 진(晉)나라가 다시 정나라를 구원했다. 정 양공 7년(기원전 598년), 정나라가 진나라의 언릉 땅에서 회맹했다. 정 양공 8년(기원전 597년), 초 장왕이 다시 정나라를 치니 정나라는 견디지 못하고 초나라에게 굴복했다. 바로 이때 진(晉)나라에서 구원을 왔으나 진(晉)나라의 장수들이 원수 순림보를 무시하고 행동해 결국 [[필 전투]]에서 초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게 내막을 알고보면 매우 씁쓸한데, 당시 진(晉)나라의 군주들이 신하들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정 양공 10년(기원전 595년), 진(晉)나라가 초나라를 따르는 정나라를 쳤다. 정 양공 17년(기원전 588년), 진(晉)나라가 [[노나라]], 송나라, [[조나라]],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쳤는데 매복계를 써서 승리했다. 여름에 허나라의 허 영공이 정나라를 따르지 않자 허나라를 쳤다. 이에 허나라가 진(晉)나라에게 구원을 청했다. [[초공왕]]이 정나라를 구원하니 진(晉)나라 군대는 물러섰다. 정 양공 18년(기원전 587년), 정 양공이 죽고 그 아들인 희비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정 도공이다. [각주] [[분류:정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58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