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중국의 관광지]][[분류:중국의 랜드마크]][[분류:중국의 문화재]][[분류: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파일:정양문 2.jpg]] 성내에서 바라본 정양문 [[파일:북경 정양문(2010).jpg]] 2010년의 정양문 전루(箭樓). 남쪽에서 본 모습. 정양문은 문루 앞쪽에 전루(箭樓)가 있다. {{{#!wiki style="margin:0px;margin-top:0px;margin-bottom:0px;padding:0px" ||<:><#CC0000> [[파일: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_4.png|width=65px]] ||<-2><:><#CC0000> {{{#gold {{{+1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br]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br]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ffffff><-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북경 정양문.jpg|width=100%]]}}} || ||<-3>[include(틀:지도, 장소=正阳门,높이=250px, 너비=100%)]|| ||<:><|4><#CCC>명칭 || 한국어 || 정양문 || || 간체 || 正阳门 || || 번체 || 正陽門 || || 영어 || Zhengyangmen || ||<:><#CCC>분류 ||<-2> 고건축 및 역사기념건축물[br](古建筑及历史纪念建筑物) || ||<:><#CCC>시대 ||<-2> [[명나라|명]] ~ [[청나라|청]] || ||<:><#CCC>일련번호 ||<-2> 3-0063-3-011 || ||<:><#CCC>주소 ||<-2> [[베이징시]] [[둥청구(베이징시)|둥청구]] 첸먼다제 [[천안문광장]] 남단[br]北京市东城区前门大街天安门广场南端 || ||<:><#CCC>등재 ||<-2> [[1988년]] || ||<:><#CCC>차수 ||<-2> 제3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 ||<:><#CCC>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2> AAAA급 ||}}} [[파일:정양문1.png|width=480]] [[파일:정양문 3.jpg|width=480]] [목차] == 개요 == '''{{{+1 [ruby(正阳门, ruby=Zhèngyángmén)](正陽門)}}}'''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둥청구(베이징시)|둥청구]](东城区)에 있는 성문이다. [[베이징 성|베이징 내성]](内城)의 남문으로, [[천안문 광장]] 남쪽에 있으며 높이 42m. [[한양도성]]과 같은 역할을 했지만 [[문화대혁명]]으로 파괴되어 사라져버린 베이징 내성의 얼마 남지 않은 부분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첸먼(前门)이라고도 하며, 극초기에는 여정문(丽正门)으로도 불렸다. == 역사 == [[파일:북경 정양문(1948).jpg]] 1946년(민국 35) 정양문 전루의 모습으로 [[장제스]]의 초상화와 함께 표어가 걸려있다. [[천안문]]에도 장제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참고로 초상화 양옆에 있는 표어는 "實現三民主義"[* "삼민주의를 실현하자". 우횡서로 써져 있어 오른쪽부터 읽는다.] 아래쪽에는 "明禮義 知廉恥"[* "예의를 밝히고 염치를 알자"]라고 써져 있다. 붉은 현수막은 거마(車馬)는 우측통행을 하자는 내용인데 국민정부는 이 해에 [[우측통행]]을 공식 선포했다. [[명나라]] 때인 1419년(영락 17)에 [[영락제]]가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처음 세웠고, 1436년(정통 원년)에 정양문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후 여러 번 화재로 피해를 입었다가 복구되었으며, 1900년(광서 27) [[의화단의 난]] 때에는 영국군 부대와 [[청나라]] 무슬림 결사대 사이에 격전이 벌어져 대파되었고, 후에 복구되었다. 철도역도 지어져서 같은 해에 정양문 서쪽에 징한철도 정양먼시역[* 현 [[베이징시역]]의 전신으로 [[루거우차오]] 인근에서 시작했던 루한철도를 베이징시내로 연장하였다.]이, 이듬해에는 동쪽에 정양문둥역[* [[베이징역]]의 전신으로 현재는 중국철도박물관 정양문관으로 이용되고 있다.]이 개업했다. [[1914년]](민국 3)에 대대적으로 개보수를 했다. [[파일:정양문 4.jpg]] 1949년에 [[중국 공산당]]이 베이징을 장악하자 [[인민해방군]]의 군사 요새가 되었다가 1980년에서야 관광지로 개방되었다. 다른 베이징 성문과 성벽들은 거의가 파괴되었지만 정남문이라는 상징성에다가 웅장함으로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관광지라서 문루 위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한데, 대신 20위안의 입장료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