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주 국왕)] || '''[[시호]]''' ||정정왕(貞定王), 정왕(貞王) || || '''[[성씨|성]]''' ||[[희]](姬) || || '''[[휘]]''' ||개(介) || || '''아버지''' ||[[원왕(주)|원왕]] || || '''생몰 기간''' ||기원전 ???년 ~ 기원전 441년 || || '''재위 기간''' ||기원전 468년 ~ 기원전 441년 || [목차] == 개요 == [[주나라]]의 제28대 [[왕]]이자. 원왕의 아들이며, [[애왕(주)|애왕]], [[사왕]], [[고왕(주)|고왕]]의 아버지다.[* 선왕의 동생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은 비교적 흔한 일이며, 평화적으로 아들이 없다던지, 아들이 왕으로서의 권력을 행사하지 못할정도로 어리다든지 등의 이유로 왕의 동생이 즉위하는 경우가 있으나 3명이 즉위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데, 그 내막은 각 왕 항목에서 다룬다. 참고로 한국의 사례로는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의 사례가 있으며, 그것이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반영해서 고려 대로 가보면 초기에는 [[덕종(고려)|덕종]], [[정종(고려 10대)|정종]], [[문종(고려)|문종]] [[의종(고려)|의종]], [[명종(고려)|명종]], [[신종(고려)|신종]], 그리고 한 왕을 지나간 것까지 더하면 바로 위에서 언급된 문종의 아들인 [[순종(고려)|순종]], [[선종(고려)|선종]], [[숙종(고려)|숙종]]이 있다.] 지백의 몰락과 예양의 조양자 암살 미수 사건이 이 왕 때에 일어났다. 특기 사항은 최초의 2글자 시호의 군주다. 단, 달리 위에 나오는대로 주정왕(周貞王)이라고도 일컬어진다. == 치세 == 정정왕 16년(기원전 453년), [[진(춘추오패)|진(晉)나라]]에서 [[지백]]이 한강자 한호(韓虎), 위환자 위구(魏駒), [[조양자(춘추시대)|조양자]] 조무휼(趙無恤)에게 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는데, 한호와 위구는 들었으나 조양자만은 듣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지백은 한호와 위구를 시켜 같이 조양자를 쳤다. 조양자가 진양성에서 농성을 하자, 진양성의 지대가 낮은 것을 안 지백은 수공을 썼다. 허나 조양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한호와 위구를 포섭해 지백을 배신하게 했고, 결국 지백은 그로 인해 몰락하고 머리마저 잘린다. 정정왕 18년(기원전 451년), 지백의 신하였던 [[예양]](豫讓)이 지백을 죽이는 것을 주도한[* 그 뿐이어도 예양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데, 그 두개골을 술잔으로 쓰는 굴욕까지 당했으니 오죽하랴. 판본에 따라서는 지백의 두개골을 요강으로 썼다 했다.] 조양자에 대한 암살 시도를 2차례나 했으나 모두 조양자에게 걸렸고, 결국 예양은 조양자의 옷을 찌르고 자결했다.[* 참고로 《열국지》에서는 그 직후 그 옷에서 피가 나와서 죽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양자는 그 뒤에도 조씨 가문의 당주 노릇을 하다가 10여년 정도 뒤에 죽었다.] 정정왕 28년(기원전 441년), 정정왕이 죽고, 그 아들인 희거질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애왕(주)|애왕]]이다. [각주] [[분류:주 국왕]] [[분류:기원전 441년 사망]][[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