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6대 국회의원/경상북도)] [include(틀:제7대 국회의원/경상북도)] [[파일:external/rokps.or.kr/845.jpg|width=150]] 鄭鎭東 [[1910년]] [[3월 25일]] ~ [[1999년]] [[10월 7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국회의원, 법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동래 정씨|동래]](東萊), 호는 백암(栢庵)이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장인어른]]이다. == 생애 == 1910년 3월 25일 [[경상북도]] 용궁군 남하면 우망리(현 [[예천군]] [[풍양면(예천)|풍양면]]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구제고등학교|경성제국대학 예과]](제6회 문과)에 입학해 1931년 수료하고 법문학부로 진학, 1934년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그리하여 경상북도 [[영양군]]수, [[영주시|영주]][[군수]] 등을 지냈다. [[8.15 광복]] 후 [[미군정]]기 때는 임시관재총국 관리국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국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예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현석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 1961년 5월까지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사무[[차관]]을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에서 중앙상임위원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6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국민당(1971년)|국민당]] [[조재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로는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고위관료 경력으로 인하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되었다. [[분류:법조인 출신 정치인]][[분류:동래 정씨]][[분류:예천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1910년 출생]][[분류:1999년 사망]][[분류:고등문관시험 출신]][[분류:제6대 국회의원]][[분류:제7대 국회의원]][[분류:민주공화당(1963년) 국회의원]][[분류:영양군수]][[분류:교통부 차관]][[분류:경복고등학교 출신]][[분류:경성제국대학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전신 학교/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