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베트남의 역사]][[분류:아이젠하워 행정부]][[분류:1954년 협정]][[분류:냉전]][[분류:회담]][[분류:인도차이나 전쟁]] [include(틀:다른 뜻1, other1=1994년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이루어진 북핵 동결에 대한 합의, rd1=북미 제네바 합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전쟁에서의 인도적 대우에 관한 기준을 정립한 국제 협약, rd1=제네바 협약)]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n-commons.jpg|width=50%]] Geneva Agreements 혹은 Geneva Accords [목차] == 제네바 회담 == 제네바 회담(Geneva Conference)은 크게 인도차이나 문제와 한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1954년 4월 26일부터 7월 20일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진행한 회담으로서, 인도차이나 문제는 어느 정도 결과가 도출되었으나 한국 문제는 해결을 이루지 못하였다. 공산측 참가국은 [[소련]], [[중국]], [[북한]],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었으며, 서방측 참가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제4공화국]], [[남한]], [[베트남국]]이었다. 이외에도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16개 국가 중 [[남아프리카 연방]]을 제외한 15개 국가와 [[캄보디아 제1왕국]], [[라오스 왕국]]이 참가하였다. [[소련]], [[미국]], [[프랑스 제4공화국]], [[영국]], [[중화인민공화국]]이 상시 참석하였고, 그 밖의 나라들도 관련 있는 주제가 논의될 때 회담에 참석하였다. == 제네바 합의 == 제네바 회담의 결과로 1954년 7월 20일 가결된 합의안이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합의 조항을 담고 있다. 각 이해 당사국들은 [[인도차이나]]에서의 정전에 합의하였고, 당시 그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군도 인도차이나에서 철군하는 데 동의하였다. [[파일:attachment/vietnam-map.gif|width=250]] '''제네바 협의에서 베트남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 통칭 월맹)과 [[베트남국]](남베트남)으로 분단된다.''' 정전선 설정에 관해서 논란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프랑스는 18도선을 고집했고, 월맹은 13~14도선을 주장했다. [[저우언라이]]가 16도선을[* 이 16선대로라면 [[후에]]랑 [[다낭]]은 월맹의 소유가 될 수 있다.],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16~18도선 중간인 17도선을 중재하여 '''베트남은 17도선을 경계로 [[남북분단]]된다.''' 제네바 협정에 명시된 5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300일 이내에 호찌민 정부군은 이북으로, 그리고 프랑스군은 이남으로 이동한다. >둘째, 민간인도 자유의사에 따라 17도선 이남과 이북으로 거주 이전을 할 수 있다. >셋째, 군사경계선은 잠정적일 뿐이며 정치적 통일문제는 1956년 7월 이전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결정한다. >넷째 이후 일체의 외국군대는 증원될 수 없으며 프랑스군은 총선거 때까지 주둔할 수 있다. >다섯째, 캐나다, 폴란드, 인도 3개국으로 구성되는 국제감시위원회를 두어 협정의 이행을 감시한다. >------- >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p.387 == 한국 문제 == || [youtube(6cgMrw4qkgI)] || || 1954년 1월 17일, 제네바 회담을 앞두고 [[서구권]]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팔아넘기는 행위는 곧 [[미국]]을 팔아넘기는 것과 같다는 메세지를 전하였다.[* 한국의 운명을 방관하여 [[소련]]에 내어주면 [[유엔]]의 권위와 위신은 과거 [[국제연맹]]처럼 유명무실해질 것이고, 이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조미 조약]]을 업신여기며 [[조선]]을 [[일본]]에 넘겨줌으로 그 다음은 [[만주]], [[중국]]까지 손아귀에 넣은 [[일본 제국|일제]]의 칼날이 결국 미국 자신에게 향했던 것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 1953년 체결된 [[정전 협정(6.25 전쟁)|정전협정]]에 따라 [[한반도]]의 통일 문제(중립화 통일방안)도 제네바 회담에서 논의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에 관한 회의는 아무런 선언이나 합의도 내놓지 못했다. 1948년 남북단독정부수립 때와 비슷하게 북한에서는 외국군 철수 후 총선거를 주장했고 남한에서는 UN감시하 총선거를 주장했지만 이미 3년동안 서로 전쟁을 치른 상황에서 현실화되기 어려웠고 남북 모두 전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명분상 형식적으로 주장한 정도였다. 한편 이 제네바 회담에서 언급되었던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방안 '떡밥' 전후로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여론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북에서는 [[조소앙]]을 비롯한 납북자 임정요인 출신&납북자 제헌국회의원 출신 등을 주축으로 '중립화통일 방안'을 주장하였으며, 남한에서는 [[조봉암]]이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 기타 == 종종 제네바 협정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비슷한 이름의 [[제네바 협약]](제네바 조약)과는 관련 없다. 제네바 협약은 전쟁포로 및 민간인 보호에 관한 인도적 조약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