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상 국왕)] |||||| {{{#ece5b6 '''{{{+1 상(商) 28대 왕[br]제을[br]帝乙}}}'''}}} || |||| '''[[왕호|{{{#ece5b6 왕호}}}]]''' ||제을(帝乙) || |||| '''[[성씨|{{{#ece5b6 성}}}]]''' ||자(子) || |||| '''[[휘|{{{#ece5b6 휘}}}]]''' ||선(羡) || |||| '''{{{#ece5b6 아버지}}}''' ||[[문정(상)|문정]](文丁) 탁(托)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1076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갑골문]]:기원전 ???년 ~ 기원전 ???년[br][[사기(역사책)|사기]]:기원전 1101년 ~ 기원전 1076년 || [clearfix] [목차] == 개요 == [[중국]] [[상나라]]의 28대 국왕. 왕호는 제을, 휘는 선(羡)이다. 상나라 27대 왕인 문정(文丁) 탁(托)의 아들로 [[비간]](比干)과 [[기자(중국)|기자]](箕子)의 형제이며 [[미자계|미자 계]], [[미중연|미중 연]], [[제신]]의 아버지이다. == 역사 기록 == 문정 탁이 죽고 뒤를 이었다. 《사기》에는 그가 왕위에 오른 뒤 상 왕조가 더욱 쇠락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을의 아버지인 문정은 주(周)가 강성해지자 계력(季歷)을 살해하여 주와 갈등을 빚었고 이는 제을의 재위기에도 마찬가지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죽서기년]]을 인용해 제을 2년에 주나라가 상나라를 공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갑골문]]에 의하면 10년에 인방[* 동이]을 정벌했고 15년에 제사를 지냈다. 제을의 맏아들은 [[미자계]]였으나 그는 서자였기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의 동생인 [[제신]]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 진실 == [[제신]]과 [[상나라]], [[주나라]] 항목을 보면 알다시피 당시 상나라는 초기 씨족 연합 국가의 체제에서 벗어나 점차 자성(子姓)의 중앙집권적인 왕권을 확립하고 있었던 시절로, 이는 [[상나라]]의 군주 계승 과정에 초기처럼 형제 상속이나 숙질 상속에서 벗어나 부자 상속이 정착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미자계가 아닌 제신이 즉위한 것도 적장자 계승으로서 자성(子姓)의 강성해진 왕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국가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제을과 제신 부자는 [[황하]] 유역의 [[상나라]] 동쪽 [[동이]]를 갈아버리면서 동방진출을 매우 적극적으로 꾀했다. 실제 《사기》에서도 그로 인한 타 지역의 경계가 약해지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 나온다. 이렇게 진출하고 복속시킨 이민족들과 노예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인신공양을 행했으며, 여러 압제를 떨쳤다고 한다. 이는 상나라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잔인한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제신의 이런 동방에 대한 공격은 자연히 서쪽의 방비를 약하게 만들어 서쪽의 패자인 [[주나라]] 국가연합에 의해 상나라가 몰락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분류:상 군주]][[분류:기원전 107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