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665년]][[분류:1666년]][[분류:유럽의 전쟁]][[분류:영국의 역사]][[분류:네덜란드의 역사]] [include(틀:사건사고)] ||<-2> {{{#fff {{{+1 '''제2차 영란전쟁'''[br] '''Second Anglo-Dutch War'''}}}}}} || ||<-2> {{{#fff [[영국-네덜란드 전쟁|{{{#fff 영국-네덜란드 전쟁}}}]]의 일부}}} || ||<-2> {{{#fff '''기간'''}}} || ||<-2> [[1665년]] [[3월 4일]] ~ [[1667년]] [[7월 31일]] || ||<-2> {{{#fff '''장소'''}}} || ||<-2> [[북해]], [[영국해협]], [[잉글랜드]], [[네덜란드 공화국]],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 ||<-2> {{{#fff '''교전국 및 교전세력'''}}} || ||<^|1>'''[include(틀:국기, 국명=잉글랜드)]'''[br]'''[include(틀:국기, 국명=스코틀랜드)]'''[br]'''[[뮌스터 주교후국]]''' ||<^|1>'''[include(틀:국기, 국명=네덜란드 공화국)]'''[br]'''[[파일:덴마크 국기.svg|width=23]] [[덴마크-노르웨이 왕국]]'''[br]'''[[파일:프랑스 왕국 어기.svg|width=23]] [[프랑스 왕국]]''' || ||<-2> {{{#fff '''지휘관'''}}} || ||<^|1>[include(틀:국기, 국명=잉글랜드, 출력=, 크기=)] [[찰스 2세]][br][include(틀:국기, 국명=잉글랜드, 출력=, 크기=)] [[제임스 2세]](포로)[br][include(틀:국기, 국명=잉글랜드, 출력=, 크기=)] [[조지 멍크]][br][include(틀:국기, 국명=잉글랜드, 출력=, 크기=)] [[라인 공자 루퍼트]][br][include(틀:국기, 국명=잉글랜드, 출력=, 크기=)] [[토머스 테드만]][br][[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 폰 갈렌]] ||<^|1>[include(틀:국기, 국명=네덜란드 공화국, 출력=, 크기=)] [[요한 더빗]][br][include(틀:국기, 국명=네덜란드 공화국, 출력=, 크기=)] [[미힐 더라위터르]][br][include(틀:국기, 국명=네덜란드 공화국, 출력=, 크기=)] [[야콥 판 바세나에르]]†[br][include(틀:국기, 국명=네덜란드 공화국, 출력=, 크기=)] [[피에테르 더비터]]†[br][include(틀:국기, 국명=네덜란드 공화국, 출력=, 크기=)] [[코르넬리우스 더빗]][br][include(틀:국기, 국명=네덜란드 공화국, 출력=, 크기=)] [[빌렘 반헨트]][br][include(틀:국기, 국명=네덜란드 공화국, 출력=, 크기=)] [[요한 마우리스]][br][include(틀:국기, 국명=덴마크, 출력=, 크기=)] [[클라우스 폰 아헬펠트]][br][[파일:프랑스 왕국 어기.svg|width=23]] [[앙투앙 르파브르]] || ||<-2> {{{#fff '''병력'''}}} || ||<^|1>선박 139척[br]군인 21,000명[br]총 4,200정 ||<^|1>'''네덜란드 공화국''': 선박 131척[br]'''덴마크-노르웨이 왕국''': 군인 21,000명 || ||<-2> {{{#fff '''피해'''}}} || ||<^|1>7,210명 사망[br]7,000명 부상[br]2,000명 포로[br]선박 29척 파손[br]선박 2척 포획 ||<^|1>'''네덜란드 공화국''' 5,150명 사망[br]3,000명 부상[br]2,500명 포로[br]선박 23척 파손[br]'''덴마크-노르웨이 왕국''' 8명 사망 || ||<-2> {{{#fff '''결과'''}}} || ||<-2> 네덜란드 공화국의 승리[br][[브레다 조약]] || [목차] [clearfix] == 개요 ==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공화국]] 사이에서 두번째로 발발한 [[영란전쟁|해상전쟁]]으로 1665년부터 1667년까지 진행되었다. == 배경 == [[제1차 영란전쟁]]가 일어났을 때 부터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공화국]]은 무역과 해상에서 경쟁관계였다. [[영국]]의 정치인들은 해상무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얻기 위한 야망을 표출한 상태였고 이와 더불어 잉글랜드의 [[성공회]]와 [[네덜란드]]의 [[장로회]]는 서로에게 이념적 위협이 된다고 여겨왔다. 제1차 영란전쟁에서 영국이 이겼으나 네덜란드는 작은 배를 위주로 운영하면서 영국의 상선들을 억류하는 상황도 계속해서 빈번히 연출되었다. 이후 [[올리버 크롬웰]]은 [[스페인 제국]]과의 [[영국-스페인 전쟁(1654-1660)|전쟁]]을 하게되고 이에 대한 여파로 [[영연방]]은 [[스페인]] 및 [[이탈리아]] 남부 지역들과의 무역을 잃게 된다. 네덜란드는 이를 기회 삼아 더 많은 무역시장을 점유하게 된다. 또한, 영국은 [[항해조례]], 관세, 제조업 규제 등 보호 무역을 지속했고 이에 반해 네덜란드는 영국과 다른 조세 적용으로 인해 상품의 가치가 더 매력적이었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는 팽창하게 되었고 영국은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다. 한편, 영국은 왕정복고를 통해 [[찰스 2세]]가 왕으로 복귀하면서 세계 무역에서 네덜란드보다 우위에 있게 될 거라는 희망을 품게된다. 찰스 2세는 네덜란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메리 헨리에타]]가 사망할 때 아들 [[윌리엄 3세]]의 후견인으로 찰스 2세를 지명했다.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의 [[스타트허우더]]가 될 인물이었고 이로 인해 영국은 네덜란드 정치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코르넬리우스 데 그라에프와 안드리에스 데 그라에프가 [[1660년]] 영국에 선물을 보내면서 영란관계를 풀어보려고 했고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1663년]], [[프랑스 왕국]]의 [[루이 14세]]가 남네덜란드(현 [[벨기에]]) 지역을 편입시키려 했고 이로 인해 영국과 네덜란드는 관계가 좋아지게 된다. 당시 수상이었던 클래런던 백작도 프랑스가 영국의 주적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클래런던의 정적이었던 헨리 베넷과 토머스 클리퍼드가 [[1664년]] [[제임스 2세]]와 협업해 현재 영국의 해상무역에서 밀리는 이유를 네덜란드라고 결론을 내리고 전쟁을 치러서라도 우위를 점해야 된다는 판단에 네덜란드에 보복할 정책들을 내세웠다.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와 [[뉴욕시|뉴암스테르담]]의 장악할 야망을 드러낸다. 전쟁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할 쯤 영국의 사략선들은 [[영국 해군]]과 협력해 네덜란드의 상선을 공격 및 나포해 영국으로 데려가는 상황들이 빈번히 일어났다. 네덜란드가 전쟁을 선포할 당시까지 약 200척의 선박이 나포되어 영국 항구로 보내졌다. 이 때 네덜란드는 새 법안에 의해 영국 국기에 먼저 경례를 했으나 영국은 네덜란드에 경례를 하지 않았고 네덜란드 지휘관들은 이를 치욕으로 느끼게 된다. 한편, 네덜란드는 제1차 영란전쟁 이후 더빗에 의해 해군을 개편했고 더 무거운 대포를 40에서 60문을 설치한 배들을 건조하고 이를 운영할 선장들을 모집하게 된다. 또한, 영국의 인구수의 1/4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난한 소작농이 대부분인 영국과 달리 네덜란드는 도시 인구수가 많아 자금이 빠르게 모였으며 영국보다 2배 많은 돈인 약 1100만 파운드를 전쟁에 사용할 정도가 된다. 네덜란드는 황금 시대를 맞아 호황을 누리면서 발전한 반면 영국은 [[흑사병]]과 이후 전쟁 중에 발발한 [[런던 대화재]]로 인해 예산의 대부분을 담당하던 도시의 인구가 줄고 자금 유출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국 의회]]는 기록적인 예산인 250만 파운드를 편성했으나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을 방법이 없어 [[런던]]시에서 대출을 받는 것에 의존하게 된다. [[1663년]] 말, [[제임스 2세]]는 로얄 아프리카 회사의 이익을 보호할 명목으로 로버트 홈즈를 보냈고 [[카보베르데]]의 네덜란드 교역소를 장악하게 된다. 이후, [[1664년]] 6월에는 서아프리카의 있는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 소속 배들을 몰수했다. [[1664년]] [[6월 24일]], 영국은 [[북아메리카]]의 네덜란드 식민지인 [[뉴네덜란드]]를 공격해 10월에 완전히 [[뉴네덜란드 정복|점령]]하게 된다. [[1664년]] 12월, 영국은 [[이즈미르]]에 정박한 네덜란드 함대를 공격했고 네덜란드는 익년 1월 위협을 느낄 시 영국 전함에 대한 공격을 허용한다. 이에 찰스 2세는 1665년 3월 4일을 네덜란드에 대한 선전포고의 날로 정하게 된다. [[1665년]] [[3월 4일]], [[카디즈]]와 [[영국 해협]]에서 네덜란드 국적의 수송선이 영국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면서 네덜란드는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 결과 == [[1667년]] [[7월 31일]], [[브레다 조약]]으로 네덜란드는 현재 [[뉴욕시]]가 있는 뉴네덜란드를 영국에게 넘기고 [[육두구]] 무역에 중심지인 [[인도네시아]]의 [[룬(인도네시아)|룬 섬]] 및 [[수리남]]의 설탕 재배지를 얻어냈다. 또한, [[신트외스타티위스 섬]]과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교역소 또한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