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조위의 황족, rd1=조림(삼국지))] [include(틀:위서)] 曹林 ?~256년 [목차] [clearfix]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삼국시대)|조위]]의 황족이자 [[조조]]와 [[두씨]]의 소생의 아들로 [[조곤]]의 친형, [[금향공주]]의 친형제. == 생애 == 패목왕(沛穆王)[* 그의 봉호인 패왕(沛王)과 그의 시호인 목(穆)을 합친 호칭이다.]으로 211년에 요양후에 봉해졌고 217년에 초후에 봉해졌으며, 221년에는 작위가 공으로 올라갔고 222년에 초왕이 되었다. 224년에는 초현에 봉해졌다가 226년에 견성에 봉해졌으며, 232년에는 패왕(沛王)으로 바뀌어 봉해졌고 235년에 조곤이 병에 걸리자 문병을 가서 병세를 살피기도 하고 조곤이 사망하자 조곤의 장례를 지휘했다. 249년에 [[고평릉 사변]]이 일어나자 [[사마의]]가 사람을 보내 [[하안]]의 아들을 잡아들이려 했는데, 하안의 어머니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했다. 사마의는 하안의 부인(금향공주)이 앞을 내다보는 말[* 하안이 죽임을 당하기 전에 하안의 행동에 대해 날이 갈수록 그르쳐지니 장차 어떻게 보신하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을 한 것을 듣고 훌륭하게 여기던 차에 조림과의 친구 사이이므로 특별히 사면해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경초(237 ~ 239년), 정원(254 ~ 256년), 경원 연간(260 ~ 264년)에 지속적으로 식읍이 증가해 이전의 것과 합쳐 4700호가 되었으며, 256년 정월 28일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고귀향공기에 있기 때문에 무문세왕공전에서 나온 경원 연간에 식읍이 증가했다는 기록과 충돌된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조조로부터 조식과 함께 [[백벽도]]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 미디어 믹스 == ===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 === 조조가 원씨 형제를 몰아내고 가족들을 업으로 불러들여 연회를 열 때 어떤 노랫소리가 들으면서 조조가 가사가 절묘하다고 하자 조조가 누구 그 가사를 쓴 것인지 궁금해하자 조림은 조식이 썼다는 것을 조조에게 알려준다. 종요가 서방의 양주의 일을 관장하다가 조조의 부름을 받아 업으로 갔을 때 조조, 조거와 함께 종요를 맞이했다. 조거가 종요가 낯선 사람이라 수줍음을 타서 대응하지 못하자 조거 대신 종요의 앉을 자리를 마련해줬으며, 조조가 나가 놀라고 하자 조거와 함께 물러났다. 흉노에서 보낸 상자에 조조가 일합소라고 써두었고 조림은 조균과 함께 그 상자에 들어있는 타락죽을 먹다가 조조로부터 과인(조조)이 둔 것을 마음대로 취했다면서 꾸중을 듣자 조림은 겁먹은 표정으로 양주부(양수)께서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했다는 말을 조조에게 변명하고 조조는 알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 소설 삼국지 유지경성 === 손려와 장합이 북벌을 하면서 제수를 건너 승지현으로 오자 이 둘을 분단했고 [[왕기(삼국지)|왕기]], [[하후혜]], [[영호우]]가 장합을 맡는 동안 조림은 손려와 대치했다. 조림은 왕기의 말에 따라 손려에게 쉬운 승리에 편승해 방심한 상태로 자신의 용력을 믿고 날뛰기에 선두에 설 것이라 했고 손려는 이를 듣고 뜨끔했다. 또 손려가 자신을 인질로 잡으려는 것에 대해 간파하는 발언을 하면서 자신이 탄 말이 보통이 아니고 도주로마다 함정과 매복을 준비했다고 해서 손려를 순간 막막하게 만들었다. 조림은 병사들을 시켜 화살을 쏘자 손려는 제수에 뛰어들어 도망가고 손려의 병사들이 손려를 공격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바람에 놓쳤다. 오나라가 한을 도와 장안을 함락할 때 조림은 영호우와 함께 왕기를 따라 오나라를 공격하다가 군을 나누면서 합비를 공격했다. [각주] [[분류:조위의 인물]][[분류:삼국시대(중국)/황족]][[분류:서출]][[분류:25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