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조(춘추시대) 군주)] |||||| '''조(曹)나라 26대 국군[br]{{{+1 조백 양}}}[br] 曹伯 陽''' || |||| '''[[성씨|{{{#ece5b6 성}}}]]''' || 희(姬) || |||| '''[[본관|{{{#ece5b6 씨}}}]]''' || 조(曹) || |||| '''[[휘|{{{#ece5b6 휘}}}]]''' || 양(陽) || |||| '''아버지''' || [[조정공]](曹靖公) 희로(姬露)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487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501년 ~ 기원전 487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시대]] [[조나라|조(曹)나라]]의 제26대 [[군주]]이자 마지막 군주. [[송(춘추전국시대)|송(宋)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해 [[송경공]]의 손에 죽었다. 달리 조 폐공(曹廢公)이라고도 한다. == 생애 == === 공손강(公孫強)을 만나기 전 === 조백 양이 즉위한 뒤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군주가 사냥을 하면 많은 물자 비용도 비용이지만, 집을 허는 등 온갖 뻘짓을 하고 보상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어느 정도는 참작 가능한게, [[춘추시대]] 까지만 해도 군사 훈련의 일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백 양 4년(기원전 498년) 여름,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의 공맹구가 조나라를 쳤다. 그리하여 조나라 군을 쳐부숴 교외에 이르러 철수했다. 조백 양 5년(기원전 497년), 공맹구가 다시 조나라를 쳤다. === 공손강을 만난 뒤 === 조백 양 6년(기원전 496년), 조나라의 공손 강(公孫 強)[* 삼국지에 나오는 요동군 태수 [[공손강]](公孫康)과는 다른 사람이다.]이 조백 양과 사냥을 나가면서 국가 대사를 논하자 조백 양은 기뻐하면서 사성으로 임명해 국정을 돌보게 했다. 조백 양 10년(기원전 492년), 송나라의 악곤이 조나라를 쳤다. 조백 양 13년(기원전 489년), 송나라의 상소가 조나라를 쳤다. 조나라가 날로 국력이 기울자 공손 강이 조백 양에게 [[패자]](霸者)가 될 계책을 냈다. === 뻘짓 후 멸망 === 조백 양 14년(기원전 488년), 조백 양이 [[진(춘추전국시대)|진(晉)나라]]와의 국교를 끊었다.[* 공손 강의 계책도 있었겠지만, 오나라가 뜨고, 실권자들이 뇌물이나 먹으면서 제대로 패업을 행사하지 않는 등의 원인도 있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는데, 이유는 후술한다.] 그리고 송나라를 쳤다. 이에 송나라의 군주 송 경공은 조나라를 포위했다. 조백 양이 진(晉)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는데, 진(晉)나라가 조나라가 진(晉)나라를 배신한 일을 들어 구원병을 단 1명도 보내지 않았다. 오직 정나라 만이 진(晉)나라의 눈치를 보다가 구하러 왔을 뿐이다. 조백 양 15년(기원전 487년) 봄, 송나라 군이 조나라를 칠 때 송군이 철수하려 했다. 저사 자비가 달아나려 하자 조나라 사람들은 그를 모욕했다. 그러자 그것이 오히려 저사 자비를 달아나지 않게 만들었다. 송 경공이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해 조나라를 쳐서 끝내 조나라를 멸하고, 조백 양과 공손 강을 잡아다가 송나라에서 [[참수]]해 최후를 마쳤다. [각주] [[분류:조(曹)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487년 사망]][[분류:망국의 군주]][[분류: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