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74년 출생]][[분류:1918년 사망]][[분류:통가 국왕]][[분류:통가인]][[분류:바바우 제도 출신 인물]][[분류:투포우 가문]] [include(틀:역대 통가 국왕)] [목차] [[파일:800px-George_Tupou_II_of_Tonga.jpg|width=30%]] == 개요 == 조지 투포우 2세는 [[통가]]의 2대 국왕이었다. == 생애 == 1874년 통가의 [[바바우 제도]] 네이아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족으로 4대 투이 펠레하케(Tuʻipelehake)[* 명목상 통가에서 두번째로 높은 직위이다. 작위는 Prince에 해당.]를 지냈다. 조지 투포우 2세의 친할머니 살로테 공주(Sālote Pilolevu)는 선대왕이었던 [[조지 투포우 1세]]의 딸이었다. 어머니는 엘리시바(Elisiva Fusipala Taukiʻonetuku)로 [[조지 투포우 1세]]의 맏아들이었던 테비타 웅가(Tēvita ʻUnga)의 딸이었다. 즉, 투포우 2세의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남매였다. 선대 국왕인 [[조지 투포우 1세]]가 워낙에 장수하는 바람에 계승권자인 자식대와 손자대가 사망하면서 계승 서열이 증손자인 조지 투포우 2세에게까지 온 것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인 [[조지 투포우 1세]]가 서거하면서, 1893년 2월 18일에 왕위에 올랐다. 1918년 4월 5일에 [[스페인 독감]]으로 서거했다. 딸인 살로테가 왕위를 계승하여 [[살로테 투포우 3세]]에 오른다 == 가족 관계 == 즉위하였을 때 18세로 독신이었다. 부족장 원로들은 투이 하아타칼라우아(Tuʻi Haʻatakalaua) 계열의 여성인 오파키바바우(ʻOfa-ki-Vavaʻu)를 추천하였으나 왕은 응하지 않았다. 이미 결혼 전에 조지 투포우 2세는 영국인인 마거릿 코커와 사생아 둘을 두었다. 1898년에 독일 부영사였던 트레스코(Waldemar von Treskow)의 자녀로, 통가-독일 혼혈인 제인(Jane (Eugenie) von Treskow)과 결혼하려고 하였으나 의회가 이의를 제기하여 무위로 돌아갔다. 이후 1899년에 [[라비니아 베이옹고]]와 결혼했다. 라비니아는 투이 통가(Tuʻi Tonga) 계열의 후손이었다. 1902년 라비니아가 세상을 떠나면서 1909년에 다시 [[아나세이니 타키포]]와 결혼하였다. 아나세이니는 조지 투포우 2세가 결혼을 거부했던 오파키바바우의 이복자매였다. 두 번의 결혼 동안 세 명의 적통 공주를 낳았고, 최소 세 명의 사생아를 두었다. * 애인 마거릿 코커(Margaret Cocker) * 1녀 아나(Ana Fakalelu Kihe Fana) * 2녀 우아이아(Uaia) * 라비니아 왕비(Lavinia Veiongo, 1879-1902) * 3녀 [[살로테 투포우 3세|살로테 마필레 필로레부]] 공주(Princess Sālote Mafile‘o Pilolevu, 1900-1965) * 아나세이니 왕비(ʻAnaseini Takipō, 1893-1918) * 4녀 엘리시바 푸시팔라 타우키오네루아 공주(Princess ʻElisiva Fusipala Taukiʻonelua) * 5녀 엘리시바 푸시팔라 타우키오네타쿠 공주(Princess ʻElisiva Fusipala Taukiʻonetuku, 1912-1933) * ? * Vīlai Tupou: 그의 아들이 [[통가 총리]]를 지닌 바에아 남작이다. 바에아 남작의 딸은 [[투포우 6세]]와 결혼하였다. == 재위 == 그의 치세에 통가 정부는 부패와 비효율성으로 유명했다. 1900년에 통가 의회는 그의 통치 능력에 의문을 품고 수천 파운드의 재정 유출을 조사하기 위해 왕의 계좌를 수사하기도 했다. 해외의 통가인 커뮤니티는 통가가 [[뉴질랜드]]에 귀속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1905년엔 아버지인 4대 투이 펠레하케가 총리를 지내며 [[대원군]]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의 치세인 1905년에 통가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