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명의 다른 지명, rd1=조지타운)]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FretfulKnowledgeableIllDrawer, 합의사항1=표제어를 조지타운(말레이시아)로 변경하는 것으)] [include(틀:말레이시아의 세계유산)] ||||<#000000><:>{{{#white {{{+3 조지타운 (말레이시아)}}}}}}|| ||<-3><:> [include(틀:지도, 장소=말레이시아 조지타운)] || [[파일:external/www.malaysiacentral.com/penang-city-hall-in-george-town-penang-island.jpg]] [[영국]]의 식민지배를 강하게 반영하는 시청 청사 [[파일:external/www.wonderfulmalaysia.com/map-georgetown-penang-island-big.jpg]] 지도 '''George Town''' ||<-3><#000><:>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fff><:>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3><:>이름 || 한국어 || 믈라카 해협의 역사 도시,[br]믈라카와 조지타운 || || 영어 || Melaka and George Town,[br]Historic Cities of the Straits of Malacca || || 프랑스어 || Melaka et George Town,[br]villes historiques du détroit de Malacca || ||<-2> 국가·위치 ||<-2> [[말레이시아]] 플라우피낭 주 || ||<-3><:> [include(틀:지도,장소=Malay Georgetown)] || ||<-2> 등재유형 ||<-2> [[세계유산#s-2.1|문화유산]] || ||<-2> 등재연도 ||<-2> [[2008년]] || ||<-2> 등재기준 ||<-2>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2> 지정번호 ||<-2> [[https://whc.unesco.org/en/list/1223|1223]] || [목차] [clearfix] >'''Bandaraya Mutiara''' >'''진주의 도시''' == 개요 == [[말레이시아]]의 도시이자 '''[[풀라우피낭]](페낭)의 주도'''. 위치는 피낭 섬. 말레이시아에서 중국계가 압도적인 도시라는 특이점이 있다. [[중국어]]로는 차오치 시(乔治市(교치시))라고 일컫는다.[* 특이하게도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도시를 '城'이라 부르는데 말레이시아 조지타운은 차오치청(乔治城(교치성))이라 부르지 않는다.]. == 역사 == [[1824년]] [[영국]]이 이곳에 [[해협식민지]]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역사가 막을 열었다. 이때는 [[싱가포르]], [[말라카]]와 같은 해협식민지를 구성했으나 저 둘은 갈려져 나와버렸으며 이후 역사가 엇갈려버렸다. 그리고 [[청나라]] 남방에서 [[쿨리]]들이 들어와 개간해서 어느새 쿨리들의 숫자가 [[말레이인]]보다 많아졌으며 쿨리들만으로 부족하자 [[인도]] 남부에서도 쿨리를 데려와서 [[타밀인]]도 많이 이주했다. 사실 여기 [[중국계 말레이시아인|화교]] 사회는 [[태국]]에서 [[아유타야 왕국|아유타야 왕조]]가 [[미얀마]] [[신뷰신]]의 침략으로 처참하게 멸망한 후 혼란[* 이때 아유타야가 멸망하면서 [[태국]]은 현 차크리 왕조 건국 전까지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으며 많은 [[태국인]]들이 [[미얀마인]]들에 의해 학살당했다. 심지어 불상 등도 미얀마에 뺏겼고 아유타야는 다시는 도시 구실을 못하고 태국 중심지가 북부 내륙에서 오늘날처럼 차오프라야 강을 낀 중부 톤부리와 [[방콕]] 일대 해안지대 근처로 내려왔다. 오늘날 태국은 이 때 일로 미얀마 하면 이를 갈며 싫어한다.]을 피해 배 타고 도망친 [[중국계 태국인]]들이 시작했다. 오늘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에서 영국 문화를 받아들이며 [[기독교]]를 믿고 [[영어]]를 쓰는 부류와 함께 [[불교]]를 믿고 [[민남어]]와 [[치우차우]] 등 전통 중국 언어를 고수하며 전통을 지키는 부류가 있는데 후자는 [[중국계 태국인]]과도 대거 섞여버렸다. 쿨리들이 들어오면서 태국 화교들과 협업하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자연스레 화교 사회가 형성되었다. [[말레이시아]]가 형성되면서 풀라우피낭 주의 중심도시가 되었으며 해협식민지 시절부터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영국]]은 이곳에 자국의 문화를 대대적으로 이식시켰으나 그렇다고 [[미국]], [[캐나다]] 등 [[북아메리카]]나 [[호주]], [[뉴질랜드]]처럼 [[백인]]이 우세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아시아]]에 위치한 식민지라서 [[영국인]] 이주민이 너무 터무니없이 적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호주처럼 유형지로 쓰일 만한 넓이도 아닌지라 백인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백인들이 거의 오지 않은 건 [[스페인]] 치하의 [[필리핀 도독령]]도 마찬가지였다. 필리핀만 해도 현지 주둔 필리핀군은 대부분 [[필리핀인]]들이 사병이고 [[스페인인]]은 장교단뿐이었다.] 대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대거 영국식 문화를 받아들였다. [[1957년]] 1월 1일 특별시 승격을 받아 '''말레이시아 최초의 특별시'''가 되었으나, [[1972년]] [[쿠알라룸푸르]]가 특별시로 승격되었고 2년 후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위상이 역전'''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화교 중심의 피낭과 말레이인 중심의 쿠알라룸푸르가 다소 경쟁관계였으나 이후로 본격화되었다. 물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쿠알룸푸르에서도 상당수다. 오히려 쿠알라룸푸르는 허허벌판 나대지를 쿨리들이 [[청나라]] 남부에서 내려와서 개간한 곳이다. 쿠알라룸푸르는 단지 정치 대권은 말레이인이 쥐고 있지만 페낭은 정치 대권조차 화교의 손에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2015년]] 1월 1일 피낭 주 전체가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페낭이 한국에서의 [[평양]] 정도 인지도라서 평양특별시(...)로 생각해도 된다.]조지타운의 의미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조지타운, 바얀르파스 등 풀라우피낭을 구성하던 도시들은 그냥 일개의 구역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여전히 풀라우피낭은 '주'로 규정되어 있으며 그 자체를 도시로 규정하는 건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피낭이 일개의 '도시'로만 취급된다. == 특징 == 현재 말레이시아 '''제3의 도시이자 실질적 제2도시'''로 [[쿠알라룸푸르]]에 한참 뒤져지지만 그래도 위상만큼은 쿠알라룸푸르 '''다음'''이다. 사실 인구 수로 따지면 정작 제2의 도시는 [[조호르바루]]이지만 싱가포르 위성도시처럼 취급되며[* 물론 나라가 갈리니까 정식 위성도시는 아니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신도시]]이다보니 아직까지 사람들은 쿠알라룸푸르 다음하면 조지타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도 50대 이상 기성세대면 한국에서 지어준 페낭대교 건설의 기억이 있어서 쿠알라룸푸르와 페낭을 당연히 양대도시로 쳐준다. [[쿠알라룸푸르]] 수도권[* 한국에서 [[서울특별시|서울]]에 해당하는 [[쿠알라룸푸르]]+ [[경기도]]/[[인천광역시|인천]]에 해당하는 슬랑오르 주가 수도권을 구성하는데 둘을 칼 같이 구분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달리 외국인에게 슬랑오르는 말레이시아에 살지 않으면 존재감이 없다.] 다음으로 [[마천루]]가 많은 곳인데, 물론 쿠알라룸푸르만큼 썩 높지는 않다. 사실 남부 바얀르파스의 [[피낭 국제공항]]이 조지타운을 향하고 있어, 어느정도 고도제한 크리를 먹기 때문이다. 그래도 별 상관없다. 왜냐하면 도시의 많은 부분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사실상 재개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하철도 못 놓을 정도다.[* 또다른 해협식민지였던 [[믈라카]]도 같은 이유로 재개발을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도 해협식민지였는데, 만약에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 계속 잔존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대도심이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오히려 페낭이나 믈라카처럼 낮은 집들이 있었을 거고 지하철 등도 제약이 많이 생겼을 거라는 말이 있는데 물론 말이 안 된다. 말라카나 페낭과 달리 싱가포르는 그렇게 역사가 오래된 곳이 아니며 오히려 셋 중에서 가장 개발 안 된 곳이었다. 개발을 하는 게 누가봐도 맞는 곳이었다. 오히려 말레이시아에서 [[홍콩]] 정도 위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역사가 살아있는 복고풍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매우 인상적이며, 오히려 이 때문에 유명한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가 일천하여 허허벌판에 마천루만 지어낸 [[쿠알라룸푸르]]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역사덕후가 아닌 현대 문물을 선호하는 대부분 일반인에게는 쿠알라룸푸르 수도권이 넘사벽으로 지내기 편리한 게 사실이며 조지타운은 한국 관광객에게 인지도가 높지도 않다. == 문제점 == 이처럼 아름답고 오랫동안 [[영국령 홍콩|영국 치하 홍콩]]과 함께 '''동양의 진주'''로 불리던 곳이며 [[싱가포르]]가 독립해 선진국이 되며 발전하기 전까진 페낭과 홍콩이 양대산맥이었다. 둘 다 영국의 식민지였고 중국인들이 금융을 발전시켰단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옛 이야기고 개발도상국에 불과한 말레이시아의 도시 1로 전락한 현 시점에는 문제점이 굉장히 많다. 심지어 [[2010년대]] 들어선 유명 관광지임에도 '''최악의 꼴통성을 자랑하는 곳'''(...)이라는 오명이 제대로 찍혔다. 무슨 말인가 하니 피낭의 [[제노포비아]] 성향을 말하는데 피낭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불친절하기로 악명이 높다. 한 예로 타 지역에 비해 유독 외국인 대상의 택시 바가지가 심하다. [[2016년]]엔 심지어 외국인이 현지식당에서 요리하는 것을 금지(...)시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주민투표로 통과된 법안이라는 점이다. 이유는 소위 이 곳이 '음식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으로 말레이시아 요리의 고장인데, 외국인들이 현지음식을 요리하면서 [[극우]]주의자들이 '요리의 질과 맛이 떨어진다' 등의 허무맹랑한 삐라를 퍼뜨린 것 때문이다. --블라인드 테스트 해보면 될 것을..-- 외국인들이 많은 지역인데도 이런 제노포비아 성향을 가진 주민들이 많아서 이 법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된 건 어쩌면 당연지사다. 참고로 말레이시아의 국빈 [[요리사]]인 쉐프 [[레주아완 이스마일]]은 이를 두고 '그냥 외국 사람들에게 말레이시아 레시피를 가르쳐주면 끝날 일인데 별 이상한 법을 만들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외국인의 토지 및 주택의 소유를 금지하려는 법안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분류:말레이시아의 도시]][[분류:말레이시아의 세계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