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창녕 조씨]][[분류:의창구 출신 인물]][[분류:1897년 출생]][[분류:1967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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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희순.jpg|width=300px]] ||
|| 성명 ||조희순(曺喜舜) ||
|| 본관 ||[[창녕 조씨]][* 25세손 '''희(喜)''' 규(圭) 재(在) 기(基) 항렬.] ||
|| 생몰 ||[[1897년]] [[10월 24일]] ~ [[1967년]] [[2월 23일]] ||
||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군 북면 이운 중방리[br](現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창원)|북면]] 감계리 중방마을[* 독립유공자 [[조윤호(독립운동가)|조윤호]]도 이 마을 출신이다.] 638번지) ||
||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1897년 10월 24일 경상남도 창원군 북면 이운 중방리(現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감계리 중방마을 638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창원면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여 북면 주민들에 대한 연락 및 규합·군중 동원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3월 23일 창원군 창원면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북면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어 [[조윤호(독립운동가)|조윤호]] 등의 청년들이 주도한 4월 2일 창원면에서의 제2차 독립만세운동에서도 조희순은 적극 참여하여 6~7천여명의 군중들과 한 목소리로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그 해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언도받고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1967년 2월 23일 별세하였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