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중국의 역사]][[분류:고사성어]] [목차] == 중국 == === 개요 === 尊王攘夷 [[춘추시대]] 때 [[춘추오패]] 즉 [[패자#s-2]]들이나 [[방백]]들이 주변의 여러 나라를 휘어잡으면서 쓰던 명분이자 레퍼토리. 뜻은 [[왕]]을 떠받들어 [[오랑캐]]들을 물리친다는 당시 중국 기준으로는 제법 그럴듯한 [[명분]]이라 춘추시대 이후로도 계속 우려먹혔다.[* 비록 말로는 내세우지 않아도 행동으로 적극 실천한 사례가 바로 [[삼국지]]의 [[조조]]. [[오환족]]을 직접 공격하여 [[답돈]]을 죽이고, [[하후연]]을 시켜 [[강족]]을 토벌했다. 조조는 기본적으로 황제는 건드리지 않았는데, 황제를 보필한다는 명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즉, [[황제]]의 명을 받들어 너희들을 손봐주겠다는 것.] === 이것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 === 병권을 다 쥐고 왕을 제멋대로 흔들면서도 '''[[충신]] 행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춘추시대 특유의 역사적 상황에서 기반한다. 일단 [[춘추시대]]의 [[주나라]]는 [[주유왕|유왕]] 이후 [[권위]]가 많이 떨어졌으나 여전히 중원의 [[제후]]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아직 주나라의 힘이 약간이나마 남아있었고,[* 대표적으로 [[곡옥대진|진나라와 곡옥의 내전]]에 개입한 것.] [[진(춘추오패)|진나라]] 등 주나라를 도와주는 제후 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춘추시대의 제후국들을 보면 [[동성 제후국|주나라와 같은 희성의 국가]]들도 많았다. 주요 국가를 기준으로 봐도 노나라, '''연나라''', '''오나라''', 위나라, 정나라, 조나라, '''진나라''', 채나라가 주나라의 [[동성 제후국]]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명분론적이고 피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보충하자면, [[봉건제]]는 기본적으로 경제력이 많이 발전하지 못했거나 중앙집권적 정치 체계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서 나오는 정치 형태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은 [[게르만족]]의 부족제를 기반으로 [[로마법|로마의 제도]]를 실정에 맞게 받아들여 봉건제를 실시한 바가 있다. 단 중국과는 다른 점이 [[혈연]]이 아닌 쌍무적 계약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그 외에도 세세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 자세한 건 [[봉건제]] 문서를 참고하자.] 그 봉건제 체제 내에서 나라들이 서로를 침탈했고, 그 과정에서 상실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주나라의 질서체계를 무시해가면서, 다른 나라를 병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던 것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중화사상]]이 있었는데, 북쪽 이민족은 [[북적]], 남쪽 이민족은 [[남만]], 서쪽 이민족은 [[서융]], 동쪽 이민족은 [[동이]]라고 하였다.[* 동이족을 꼭 [[한민족]][[환빠|만 가리키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동쪽 이민족은 다 동이라 불렀다.] 이들은 당시 중국에 위협이 되었다.[* 남만의 경우는 주로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를 일컫는다.] 그 이유는 서융의 경우 [[견융족]]이 주나라를 쳐서 호경에서 낙읍으로 동천하게 만들었고, 북적의 경우는 [[위나라|위(衛)나라]]를 멸망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랑캐들을 토벌하고 왕을 받든다고 하면 명분 상으로 상당히 그럴듯하고 멋지게 보이는 주장이었다. === 사례 === [[정환공]]이 [[유왕]]을 모시고 [[시안(도시)|호경]]에서 [[낙양|낙읍]]으로 피신하면서, 견융족과 싸우다가 전사한 것. [[제환공]]이 [[관이오|관중]]의 조언을 받아들여, [[주나라]] [[천자]]를 받들어 모시면서, 당시 이민족인 고죽국을 정벌하고, [[위나라]]를 침략해 [[위의공]]을 죽이고 멸망에 이르게 한 북적의 일파인 적족 또한 상당한 피해를 안겼다.[* 다만 이것은 위의공이 [[학]]을 너무 좋아해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이 적지 않다.] 그리고 [[진문공]]은 당시 오랑캐로 분류되었던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를 박살냈으며, 그 전에 주나라 천자인 [[양왕(주)|양왕]]의 아우로서 당시 형을 몰아낸 아우인 희대를 토벌하였다. 이들 이후부터는 주나라의 권위가 점차 약해졌기 때문에 존왕양이 관련한 이렇다 할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 후일담 === 이 명분이 전근대 중국 기준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인 명분론이었기 때문에 혼란기에 군벌들이 자주 내세운 레퍼토리였고, [[유교]]에서는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다.[* 유교에서 중화사상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평천하 덕목에 들며, 존왕사상은 충으로 포장되었다.] 후대에는 봉건제가 없어졌고,[* 단, 분봉하는 형식 자체는 남아있었지만 실권은 없고, 경제적 이익만 주었다.] 중앙집권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제후로서가 아닌 지방관으로서 혹은 대신으로서 집행한다는 식으로 현실에 맞게 변화하였다. == 일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존황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