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blog.joins.com/%EC%A2%85%EB%A1%9C%EC%84%9C%EC%A0%811.jpg]] [* 이렇게 보면 작은 것 같지만 실제론 6층이나 되는 거대한 서점이었다. 당시 창문에 [[김홍도]]의 서당 그림이 새겨진 것이 인상적.] [목차] [clearfix] == 개요 == [[1907년]]에 개업하고 [[2002년]]에 폐업한 [[대한민국]]의 [[서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66 ([[종로2가]])에 소재했다. 현재 존재하는 [[종로서적]]과는 무관하다. == 역사 == [[대한제국]]이던 [[1907년]]에 '''예수교서회'''로 처음 개업[* 참고로 이 예수교서회와 [[예수회]]를 헷갈려서 종로서적은 가톨릭 선교사들이 세운 서점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서점이었으나 [[2002년]] 최종[[부도]]로 폐점되어 현재는 사라진 서점이다.[* 이후 현존하는 서점 중에 가장 오래된 서점이 된 [[부산]] [[영광도서]]의 김윤환 대표는 '고작 46년에 전국 최고(最古)다? 만감이 교차한다.'라고 말했다.] 한때는 [[종로]]의 명물이자 독서가 및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낭만이 가득하고 책과 함께한 곳이자 [[종로]]에 가면 항상 떠올리는 서점으로 지금의 중장년층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거나 회자되는 서점이기도 하다. 서점 구조는 6층까지 분류되었으며 2~6층 사이 국내도서 및 양서, 일서 등을 판매하였고, 4~5층 한쪽에는 문구 및 음반매장이 있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종로]]에서 가장 알아줬던 서점이기 때문에 당시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였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광화문에 [[교보문고]]가 개점하고, 이후 종로1가에 [[영풍문고]] 종로본점이 개장하면서 고객층 이탈이 이어졌다. 종로서적의 마지막 기회로 지금의 [[종로타워]]가 완공되고 건물측에서 지하에 대형서점을 입점시키려 종로서적측에 이전을 권유했으나, 결국 푸드코트와 쇼핑몰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 자리는 [[반디앤루니스]] 종로점이 되었으나 2016년 9월 13일 폐점했다. 이후 신 종로서적이 반디앤루니스 자리에 오픈했다. 이 당시 종로서적의 회생을 두고 많은 말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영진의 고집 때문이었다는 말이 있다. [[개신교]] 계열이다 보니 1층에는 반드시 개신교 서적과 관련 물품들로만 채웠고[* 원래 개신교 서점에서 출발한 곳이다 보니 대형서점 중에서 개신교서적을 가장 잘 구비한 서점이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그랬지만 지금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 이것이 고객층 이탈로 이어졌다는 것. 비교적 자유롭게 서가배치와 리모델링을 거듭하며 고객을 유치했던 교보나 영풍과 다른 점. 사실, 다른 대형서점들과 달리 여러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책 구경을 해야 하는 구조적 약점이 있었다. 서가가 수평으로 넓게 펼쳐진 교보문고와 달리 서가가 수직으로 배치된 셈.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층 구조가 아니라서, 층간 계단이 비교적 짧았다. 때문에 오르내리기가 별로 힘들지 않고 오히려 특징이 있어 좋았다는 이들도 많다. 2002년 6월 4일 최종부도 처리[* [[2002 한일 월드컵]] [[히딩크호/폴란드전|폴란드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승리를 거둔 날이었다.]로 결국 폐점이 확정되어 영업을 종료했다.[* 이를 두고 [[안경환]] 당시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서울 법대]] 학장은 '종로서적이 망했는데 그깟 월드컵이 대수냐'라고 통탄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투고한 바 있다.[[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6/07/2002060755414.html|문학의 숲…/ 월드컵과 종로서적]] --그런데 그렇게 통탄하고 나서 학생들더러 우리나라 응원하라고 근대법학교육백주년기념관에서 축구 경기를 틀어주었다.--] 종로서적에 있었던 도서들은 모두 회수처리 되었으며, 서점 자리에는 학원이 들어섰다. 이후 학원에서 오프라인 강의는 중단되고 온라인 강의 사이트의 사무실로 활용되다가, 2010년 말에 1~4층만 리모델링하여 [[다이소]] 600호점이 들어섰다.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1223/6265538.htm|#]] 비록 오래 전에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지금도 옛 종로서적 입구를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연상된다는 사람들도 있는 등 아직 종로서적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구 종로서적이 있던 곳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0번 출구 앞에 있는 건물로 [[다이소]] 종각점이 들어서 있었으나, 다이소 역시 예전 지오다노 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건물 전체가 공실화되었다. 당시 종로서적 대표였던 [[장하구]]는 [[장기하]]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이 그가 별세했을 때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8&aid=0003977932|#]] 종로서적이 부도날 당시 장하구의 조카인 장덕연 사장으로 대표가 바뀌고 주변에 교보문고, 영풍문고가 생기며 경영이 어려워지자 아무런 통보 없이 출판사들의 지불을 연기했다. 또한 [[전두환]]의 장남이자 당시 [[시공사]]의 주인이었던 [[전재국]]에게 종로서적을 인수해달라 했으나 거절당했으며[[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300|기사]][* 이쪽은 [[북스리브로]]라는 서점 브랜드가 있었으며, 인근의 을지서적을 인수했다.], 당시 장덕연 종로서적 사장의 이기적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고의부도를 내게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6&aid=0000004212|기사]] 이로 인하여 종로서적에 남아 있는 도서들은 각 출판사로 회수되지 못했으며 결국 많은 출판사들이 연쇄 부도를 맞았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314|기사]] [[청계천]] [[헌책방]] 사장님들이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고의 부도 이후 출판사로 회수되지 못한 엄청난 양의 새책이 청계천으로 흘러들어왔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종로서적, version=111, paragraph=1)] [[분류:대한민국의 서점]][[분류:1907년 기업]][[분류:2002년 해체]]